운남기행 2

2019. 11. 12. 11:31유라시아학당/2017 운남기행

운남기행 2

아침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씻고 공항을 어슬렁 거리다 첫 지하철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작년에 운남학사의 최적지라며 답사를 왔던 곳이다. 그 사이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어 6호선-3호선-1호선으로 갈아타며 남쪽까지 지하철로만 왔다. 작년 정아와의 추억이 담긴 쌀국수집에 들려 닭육수 쌀국수(米线. 미씨엔)를 시켰다. 작년에 비해 가격은 1위엔 올랐고, 맛은 1위엔 만큼 떨어졌다. 요기를 하는 사이 범이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닿아 휴대폰이 개통되었다. 문자메시지로 인증번호를 받을 수 있게 되니 중국 카톡인 위챗과 위챗페이, 공상은행 온라인뱅킹 등이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오늘 묵을 곳도 바로 예약했다.

 


문득 언제부터 인터넷의 도움 없이 여행하는 게 이렇게 어려웠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만해도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청하며 다녔었다. 길을 물을 때면 도움을 청하는거보다 지도앱을 열어 찾는 게 편해 쓰긴 하지만 막상 앱을 쓰지 못하게 되니 사람을 대하는 감 역시 떨어져 있음을 느낀다. 작년보다 중국말을 사용하는 빈도가 부쩍 줄었다.

숙소는 생각보다 쾌적하다. 오기 전에 뻥을 조금 섞어 천원짜리 숙소에서 자겠다고 했는데 중국도 한 해 사이 물가가 많이 올랐나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천원짜리는 없다. 작년에는 일 해주면 공짜로 재워주는 곳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다. 그나마 가장 싸면서도 평가가 좋은 6인실 도미토리를 29위엔(약 5천원)에 예약했다. 오늘 입주자가 없어 나 혼자 쓰니 편하다. 이 일대에 복층 아파트를 개조해서 방을 다닥다닥 넣은 곳이 여럿이다. 숙박객은 근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데, 근처에 빌딩이 쭉쭉 올라가는 걸 보면 앞으로 머무는 이는 점점 늘어날테다.

못 잔 잠을 한 숨 자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많이 걸었다. 1시반쯤 나가 7시가 다되어 돌아왔으니 족히 5시간은 걸은 셈이다. 쿤밍은 태국의 방콕,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프르와 비슷한 경도에 위치해 있지만 베이징과 같은 시간대를 쓰는터라 7시에도 밝다. 아파트 입구 과일가게에서 예쁘고 아담한 감을 여섯개 사와 그 중 세 개를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혼자 먹기엔 아까운 맛이다.

<대학도시와 운남 사범대학교>

오늘은 운남 사범대학교를 주로 거닐었다. 쿤밍시 중심부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30여 분을 따라 내려오면 청공구(呈贡区)라는 지역이 있다. 쿤밍은 운남성의 성도(수도)이기 때문에 현재의 쿤밍시 중심지를 성정부가 있는 중심지로 두고 남쪽에 청공구라는 신도시를 개발해 쿤밍시의 중심으로 삼는 계획이 후반부에 들어섰다. 시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9개의 대학(운남사범대, 쿤밍이공대, 운남민족대, 운남교통 직업기술학원, 운남대, 운남국방공업직업기술학원, 운남예술학원, 운남중의학원, 쿤밍의과대)을 새로 짓거나 분교를 만들어 이전하였다. 분교라 하지만 장기적으로 현 중심지에 있던 본교와 기능을 분리해 대학기능은 이곳으로 통합할 계획이라고 하니 구도심과 신도심의 역할나누기라고 볼 수 있겠다.

대학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서너시간을 걸어야 겨우 외곽을 한 바퀴 돌 수 있을만한 크기의 대학이 9개니 그래서 이 지역을 따쉐청(大学城. 대학도시)이라 부른다. 나즈막한 산 하나 없는 넓은 평지가 있다는 것도, 거기에 아파트나 상업공간을 짓지 않고 큰 인심을 쓰듯 넓직넓직하게 대학들을 얹어두는 배짱도 중국적 스케일의 일부인가 싶다.

운남 사범대학은 특별히 가보고 싶었다. 유라시아 견문 모임을 하면서 운남성에 얽힌 중국 근현대사를 들춰보게 되었다. 1937년 일본이 노구교 사건을 빌미로 중국과 전쟁을 일으킨 뒤 국민당이 패퇴하자 당시 주요 대학이던 북경대, 청화대, 남개대가 연합하여 1938년 쿤밍에 국립 서남 연합대학을 만들었다. 각 대학이 보관하고 있던 장서와 교수진들이 모두 몰려와 변방이던 운남성이 중국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었다. 전쟁 후 세 대학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운남 사범대학은 이름을 바꾸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문화적 중심지였던 현장을 두 발로 천천히 느끼고 싶었다. 실은 그마저도 1938년 당시 학교가 있던 그 장소가 아니었지만.

학교 안쪽에 삼각형 탑이 서 있다. 탑의 삼면에는 북경대, 청화대, 남개대 표식과 함께 각각 여덟자 성어가 적혀 있다. 찾아보니 북경대는 박학심문 신사명반(博學審問 愼思明辦 널리 배우고 자상하게 묻고, 신중하게 사고하여 분명하게 밝힌다), 청화대는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厚德載物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으며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포용한다), 남개대는 윤공윤능 일신월이(允公允能 日新月異 사회를 위해 나날이 새롭게 발전해 간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각 대학의 교훈이라고 한다.

 


막상 와보니 운남사범대는 과거를 추억하기보단 미래를 그리는데 더 집중하고 있는 듯 했다. 작년에 왔을 때 왜 허허벌판에 대학을 이렇게 큼지막하게 지어났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방학 중에 방문해 텅빈 캠퍼스를 거닐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남아시아를 공부하면 할수록 쿤밍의 이런 행보가 장기적인 포석임에 무게가 실린다. 아세안과 운남의 관계가 점차 밀접해 짐에 따라 더 많은 아시아 학생들과 중국 학생들이 쿤밍에 모여 교류를 이어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변방이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캠퍼스에는 동남아시아인과 구별이 어려운 생김새의 학생들이 제법 보였다. 실제 운남성의 소수민족들 중에는 이웃나라인 미얀마, 라오스, 태국, 베트남의 소수민족과 같은 민족인 경우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와 국경이 두드러지다보니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었을 뿐이다. 국가가 국경으로 나뉘고 국민으로 묶으려해도 역사적 맥락을 공유하고 몸으로 부딪히는 관계에선 더 큰 동질감이 발생하는 법이다. 앞으로 아세안과 운남이 밀접해질수록 소수민족들의 가교역할도 더 커질 것이다.

수시로 지도를 살펴본다. 의식적으로 국경과 지역간 경계를 생략하여 중국과 아시아를 보려고 노력한다. 노력한다는 건 쉽지 않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살다보니 국경의 의미가 강하게 박혀있다. 함부로 넘어서는 안되는 두려운 선으로 각인되어 있다. 분단이 준 심리적 억압이 생각보다 크다. 사고도 제한된다. 넓은 국경을 공유하고 일일이 막을 수도 없는 대다수 국가의 사람들에게는 국경의 의미가 우리와는 다를테다. 이번에 그 느낌을 담아보려 한다.

<쿤밍남역>

운남 사범대학을 북쪽으로 나와 십여 분 걸으면 쿤밍남역이 나온다. 주위는 역시 허허벌판에 가깝다. 쿤밍남역은 최근에 개장하였고, 그에 맞춰 지하철도 연결되었다. 이 역은 일반 열차는 서지 않고 고속철만 지난다. 고속철은 상해로, 더 나아가 북경까지도 연결된다. 북경과 상해를 연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고속철이 몇 년에 걸쳐 이제 쿤밍까지 닿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테다.

 


과거 쿤밍에서 북경까지는 기차로 편도 4일이 꼬박 걸렸다. 그래서 길다면 긴 일주일 간의 설연휴에도 북경과 같은 대도시에서 일을 하고 잠시 귀향하던 농민공들이 집에 왔다 반나절만에 다시 돌아가야 했다는 웃픈 이야기부터, 붐빌 때는 기차에 자리가 없어 4일동안 의자밑이나 짐을 놓는 선반까지 사람이 들어가 잤다는 선배들의 과장 섞인 무용담이 술안주꺼리로 회자되기도 했다. 아직도 48시간이 걸리는 완행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고속철이 생기면서 쿤밍에서 북경까지 11시간 이내로 주파하는 길이 생겼다.

속도는 거리를 짧게 만든다. 인천에서 쿤밍까지 비행기로 4시간이면 날아닿으니 몇 번만 오가다보면 심리적 거리감은 점차 사라진다. 길은 참 묘하다. 단순히 물리적 형태가 아니라 생각과 느낌에 변화를 일으켜 관계를 달리하게 한다. 쿤밍까지 닿은 고속철은 이제 베트남으로 연결되려 하고 있다.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이어지는 공사도 진행중에 있고, 서쪽으로는 미얀마를 거쳐 방글라데시와 인도까지 세계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지역 간의 연결도 앞으로 10여 년이면 개통식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길이 뚫리는 게 마냥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테지만 고립으로 지역 문화를 지키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가능치 않다는 걸 역사를 통해 여러차례 확인한 바 있다. 오히려 아세안의 '만달라' 실험이 중국의 '중화제국' 실험과 어떻게 융화될 수 있을 것인지 살피고 거기에 평화로운 힘을 보태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한 일일테다. 중국발 길의 충격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려 한다.

 

2017.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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