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많은 90년대생, 겁없이 살고싶다

2019. 11. 23. 21:33동네살이&일상/겁없는 구겁들

  94년생 남수정: 백수는 처음이라

 

  나(수정)는 재작년 초, 우동사에 살기 시작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비전화공방서울>에서 제작자 활동도 시작했다.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은 전기와 화학물질로 대변되는 돈과 에너지의 소비를 최소화하면서도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곳이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이곳에서 동료들과 온갖 자립기술을 배우며 1년을 뛰놀았고, 자연스레 삶은 변화해갔다. 제작자과정 이후엔 정훈과 함께 볼음도에서 1년 반 가량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백수가 된지 2달정도 됐다. 

  백수는 처음이라,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시간이 마냥 신나다가도 어리둥절하다. 그러고 보면 이토록 시간을 자유롭게 써본적이 있었나 싶다. 미취학아동시절 이후로는 줄곧 가야하는 곳이 있거나 해야하는 일이 있는 일상을 보냈으니,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속박되어 부자유를 느꼈던 것이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자유란 어디에 있는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내가 맞는 이 시기는 그런 질문을 꺼내어 마음껏 파고들 수 있다는 데서, 내 25년 8개월 평생 중 가장 자유로운 때다.

 

 

  90년생 김정인: 놀고싶어서 퇴사했어

 

  정인은 산을 좋아해서인지 산행을 자주한다. 그런 정인을 따라 쨍한 햇볕과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낮으막한 산길을 걷는 걸 나도 좋아한다. 그 역시 평일 낮에 산을 오를 수 있는 시간부자, 한마디로 백수다. 정인은 20대초반에 다닌 정토회를 인연으로, 작년 초부터 우동사에 살고있다. 그무렵 직장을 다녔는데, 자신이 출근한동안 언니오빠들이 재미나게 노는게 너무 부럽고 끼고싶어 퇴사를 했다고 한다. 정인다운 이유다. 최근엔 스즈카에 2개월간 연수를 다녀왔고, 정식유학을 준비하며 한동안 검암에서 지내는 중이다.

  산에도 가고 수다도 떨고 재미있는데, 오늘은 왠지 콧바람을 쐬고싶은 날이다. 마침 오늘 비전화카페에서 화덕피자를 굽는다던데, 오랜만에 서울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멋도 부리며 기분을 낸다.

 

 

비전화카페(非電化 café).  비전화공방서울의 제작자과정 중 직접 지은 스트로베일하우스 건물을 현재 졸업한 제작자들이 전기없는 카페로 운영하고있다.                   @cafe_off_grid

 

 

 

  92년생 남다정: 퇴사하고 싶은데, 불안해

 

  카페에선 퇴근한 다정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친언니 다정은 나와 같은 시기 우동사에 살기 시작했다. 우리 중 유일한 직장인인데, 최근엔 퇴사욕구가 커졌다. ‘더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고싶어서’ 라는 단순하고 분명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장애물이 욕구와 실행사이를 가로막고있다. 돈에 대한 불안.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하고, 돈을 못 벌면, 먹고 살지 못할거란 생각은 실로 농도짙은 불안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우동사 3,40대 언니오빠들은 백수라는 신분으로 몇 년째 버젓이 잘만 살아있지 않은가.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단말인가? 그래. 분명 모아둔 돈이 있거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기술이 있거나, 금수저일테다. 반면에 우리 20대들은 통장잔고도 없고, 이렇다할 전문기술도 없고, 부모 빽도 없으니 불안이 가실 수가 있겠는가. 추측으로 신세한탄을 늘어놓던 중, “그러지 말고 직접 물어보자” 며 누군가 공을 쏘아올렸다.

 

 

 

  축 구겁들 결성: 90년대생 겁쟁이들, 뭐라도 해보자

 

 

우리 90년대생은 돈도 빽도 없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뭐라도 쌓아야 할 것 같아 불안한데 언니오빠들은 불안하지 않으냐고 물어보자. 뭘 해서, 뭘 쌓아서 불안하지 않은건지, 그게 있어도 불안은 여전한지, 그와 상관없이 안심인건지. 불안을 꺼내 펼쳐보면 정체를 알 수 있지않을까.

그렇게 90년대생 겁쟁이들의 모임, <구겁들>은 결성됐고, 어느새 우리의 푸념어린 수다는 ‘구겁들을 부탁해’ 인터뷰 기획회의로 흘러갔다.

 

To be continued…

 

 

 

 

글, 사진: 남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