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버는 일상] 날 짜증나게 하는 환자를 만나다

2019. 12. 1. 16:19관찰일기; 자신을 알다

 

요즘 일주일에 두 번, 약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에 일하면서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다

(짜증이 확 나서 기억나는 순간이었으려나.. ㅎㅎ)

 

환자에게 약을 설명해 주는 복약지도 포지션으로 오전 내내 일하고 있었다

대형병원 바로 앞에 큰 약국인데다 오늘은 월요일,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다

동시에 기다리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만 대략 50여명 수준

모두들 이야기를 하거나 전화통화를 하고 있어 웅성웅성 하는 가운데

마이크와 번호표도 없이 생목으로 환자 이름을 부르면 한 번에 알아듣고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여러번 이름을 부르는 사이, 나의 약한 목은 성대결절이 걸릴 것 같은 기분이다

진이 쏙 빠진달까 -_-;;

 

그런 와중에 할머니 한 분이 나에게 약을 받으러 오셨다

약이 좀 복잡하게 나왔는데 이러저러 무슨약인지, 어떻게 먹는건지 설명해드렸다

 

‘이거 무슨 약이라고?’

‘이거 대부분 다 천식약이에요. 천식약이구나~ 생각하시면 되요’

 

아 집에 먹는 약도 많은데 또 이리 받아가면 어쩌구 저쩌구.. 혼자 얘기하시더니

‘이거 무슨 약이라고?’  또 묻는다

‘할머니, 이거 천.식.약 (또박또박 천천히) , 천식약 이라고요’

 

또 뭐시기 어쩌구 저쩌구 애기하시다가 또 묻는다

‘이거 무슨 약이라고?’

 

그 순간 짜증이 치솟았다.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으나 아 어쩌라고!!!!!!!’ 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꾹꾹 참으며 다시 애기했다

 

‘할머니, 아까 계속 설명 드렸자나요! 천.식.약 이라고요 천.식.약! 봉지에 무슨약인지 써드려요?’

 

갑자기 그제서야 할머니가 어쩌구 저쩌구 하시던 궁시렁거림을 멈추고

화색을 보이시며 연신 끄덕이신다

‘응응~ 좀 써줘~’

 

....

할머니가 말로는 무슨 약 이냐고  하고 있지만

집에 다른 약도 많은데 이 약도 이렇게 받아가면 다 섞여서 뭔지 모를거 같은..

그 난감하고 답답한 마음을 나에게 표현한거였구나

그래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무슨약이냐고만 계속 물었구나

 

할머니의 그 밑마음보단 드러난 말에만 관심이 가있었다는게 그제야 살펴졌다

뭐냐고 묻는다고 생각해서

뭐라고 분명 설명했는데

무려 3번이나 같은 걸 다시 묻는다고 생각되니 못 알아듣는 상대가 어이없고 짜증이 났다

안그래도 목 아프고 지치는데 날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내면의 밑마음은 각자만의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거 같다 

상대의 말을 내 방식대로 듣고 있다는 것을 놓치는 순간

나도 짜증나고, 상대도 답답해지고 그런 길로 쉽게 슝 가버린다

늦게나마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진 순간

할머니도 화색이 돌고, 나도 괜시리 머쓱해지며 웃게 되었다

 

작지만 소중한 순간

일상에서 이런 순간들을 더 더 자주 만나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