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우리동네, 젖은 장작 말리는 이야기

2019. 11. 26. 10:32관찰일기; 자신을 알다

어제 깡순과 택시타고 집에 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깡순여신이 정진이 제작하는 영상의 주인공으로 출연해주었고, 그 촬영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깡순이 '티스토리 블로그에 그림을 연재하고 싶은 기분은 있는데 어떤 걸 하면 좋을지 잘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도 딱 '깡순이 이런 그림을 블로그에 올려주면 좋겠어' 라는 건 분명하지 않아서 내가 왜 동네친구들이랑 같이 블로그를 하려고 하는지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다시금 블로그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타들어가지 않는 장작

지난 8월에, 크리킨디센터에서 하는 조한혜정 선생(이하 조한)의 강의를 들으러 다녀왔다. 조한은 오래전 활(박활민)이라는 친구와의 대화를 이야기하셨다. 조한 왈 '예전에는 내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거나 제안을 하면, 같이 공부하는 제자들이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서 뭔가를 해보는 에너지가 컸는데, 요즘 애들은 젖은 장작처럼 아무리 불을 지펴도 타들어가지 않는다' 말했단다. 그러자 활이 '선생님 어디가서 그런 이야기하지 말라'며 '지금은 장작이 젖어있기 때문에 젖은 장작을 말려야하는 시기'라고 했단다. 활의 이야기를 듣고 조한 쪽에서 꽤 생각이 전환되셨던 것 같다. '아 지금은 그런 시기이구나. 이 친구들은 그렇구나' 하고.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표현은 좀 다를텐데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다) 

활은 어떤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조한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젖은 장작, 먼저는 장작을 말려야하지 않나' 하는 그 이야기가 꽤 진하게 남아있다. 강의에서 조한은, 자신은 요즘 강의라는 형태로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재미없다며,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며 청중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조한의 제자이기도 하고, 우동사에 같이 살고 있는 윤자에게 '우동사에서 장작 말리는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도 하셨다. 윤자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 지금 우동사라는 이름으로 관계맺으며 사는 우리가, 장작을 말리고 있는 중이려나 싶었다. 

우리동네 장작 말리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택시타고 오면서 깡순에게 전했다. 우리동네에서 친구들과 관계맺으며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돕고 이야기해나가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 좀 전해보고 싶었다고.

젖은 장작을 말리는 것이 나에게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하지 않으면 안될 것들로 뒤덮인 강박적 사회에서 각자의 마음 속의 바램을 살려서 그것으로 움직이는 연습을 해보는 중인 것 같다. 열심히 하지 않는 자신을 혹은 그렇게 보이는 다른 사람을 탓하고, 어떤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을 부족하다 여기고 채찍질하는 매커니즘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일. 그런 것들이 실제로 해야하는 일인지,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인지,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일인지 자신에게 물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뭔가를 더 하는 쪽보다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는,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있는 것을 줄여가는 '빼기'의 삶인 것 같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적 생각에서 가벼워지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가깝게 가게 되는 것 같다. 지금 그런 것들을 해나고 있다. 정리해서 표현하니 좀 추상적이지만, 그렇게 보내는 일상을 있는그대로, 날 것으로 기록하고 소개하고 싶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라는 대화의 마법

그런 것은 혼자서 자신에게 물어보거나 연구해서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서로 물어주고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더 쉽고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다. 깡순과 택시에서 나눈 대화도 그런 것 같다. 깡순이 '그림을 올리겠다고 말은 했지만, 어떻게 할지 잡히지 않는다'며 나에게 물어주었고, 듣고는 나는 나대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생각하고 이야기해나가는 과정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부분이 보여왔다고 할까. 이런 묻고 답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장작을 말려 자신의 맛과 향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하고 싶어?' '무엇이 하고 싶은거야?'  요즘 동네에서 서로 많이 물어봐주는 질문이다.

예전에는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해야지' '안할거야?' '왜 안했어?' 라는 질문을 많이 해왔다. '해야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점점 줄여가고 각자의 그때그때의 바램으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일상을 채워가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한사람 한사람이 가볍고 자유롭게 되는 그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록해가고 싶다. 

 

2017년 우리동네 축제 포스터

 

축제 브로찌 만들기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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