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불멍] 우리는 묵찌빠같은 사이

2020. 5. 2. 00:34볼음도 프로젝트

Q. 4주쯤 지나 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인상에 남는다. 예상하지 못하게 그런 순간, 서로의 케미가 일어나는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 같다. 지금 서로에게 서로가 어떤 존재인지 듣고 싶다. 단디에게 윤자는, 정훈은 어떤 존재인지. 셋 모두에게 듣고 싶다.

 A 정훈 : 꼭 좋은 말 안해도 되지요?(웃음) 1주차부터의 변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윤자가 ‘캠프를 같이 준비한다기’ 보다 ‘이걸 소비하는 입장이다’ 라고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단디에 대해서도 ‘지금 단디의 어떤 필요가 있어서 이걸 한다’ 라고 보였다. 세명이 같이 시작하긴 했지만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의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지금은 좀 고마운 느낌이다. 아까 윤자가 어리광부리고 싶다라는 이야기도 했지만 나 역시 편안하게 ‘이것 좀 해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는 사이가 되고 싶다.

요즘 농사일이 바빠서 캠프 준비기간동안 매일 농사일 하러 갔었다. 심지어 지난 주에 허리를 다쳐서 캠프 준비를 같이 못했다. 여느 때 같으면 눈치가 보였을텐데 정말 편하게 지내다 왔다. 낮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윤자가 해준 밥 먹고, 단디가 만들어주는 선반 기웃기웃하면서 보고. 그런 자신을 보면서 내가 두 사람을 편하게 의지하고 지내고 있구나 알았다. 그런 변화가 나에게 가장 크다. 두 사람에게 든든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정훈에게 윤자는 고마운 사람, 단디는 든든한 사람.(웃음)

 A 윤자 : 나에게 두사람이 이 몇 주의 과정을 통해서 더 깊어진 느낌이 있다. 더 깊어졌다는 게, 내가 좀더 의지할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잘 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 내 못난 모습을 보여도 되는, 이렇게 해도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나의 어떤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에게 정훈은 든든한 버팀목같은, 단단하게 밑에서 탁 받쳐주는. ‘아, 정훈이 있으면 나는 안전해 안심할 수 있어’ 이런 느낌이다.

단디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잘 해주고 싶고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잘 되도록 옆에서 돕고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그런 느낌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구나. 그래서 마음이 든든하고 편안하고 그렇죠.

A 단디 : 우리 셋의 공통점 중 하나가 어릴 때 <모험도감>이라는 책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책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줬다. 한 10살쯤 그 책을 보면서 야생의 삶에 대한 로망을 키워 나갔다.

그 동안은 ‘좀 특이한 애’ 라는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졌던 것 같다. 20대 때부터 시골에 가서 살면서 목수일 하고, 혼자 텐트 쳐놓고 지내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발가벗고 돌아다니고 별자리를 보기도 하고. 나는  이런 것들이 너무 재미있고 계속 하고 싶은데 그런 걸 같이할 사람들은 못 만나고 혼자 그런 것들해왔다. 그러면서 ‘쟤, 좀 특이해’ 이런 소리를 들어왔다.

그런데 볼음도에 와서 물만난 물고기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는 내가 관심 있어하고 좋아하고 잘 하는 것들이, 중요한 일이 되고 또 잘 쓰이는 것 같다. 사람들이 그걸 재미있어하고. 시골에 혼자 내려가서 지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훨씬 내 취향대로, 더 서바이벌로 어떻게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 느낌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가지 않고 여기에서 하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굉장히 고맙다. 정훈이 이런 터전을 이미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가서 지내지 않아도 도시와 시골을 내가 마음껏 오가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 이미 차려진 밥상에 내가 숟가락을 얻은 것 같다. 그렇게 토대를 만들어준 정훈이 굉장히 고맙다.

그리고 정훈이 스케치해놓은 볼음도에 윤자가 색을 넣어준 느낌이다. 처음에 정훈이랑 ‘둘이 해보자’ 했을 떼 내심 걱정했다. 남자 둘이 시골에서 지내는 모습이 딱 (나는 자연인이다)일 것 같았다. 너무 칙칙할까 걱정했다. 밥도 세끼 라면으로 떼울 것 같고. 윤자가 결합하면서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리틀 포레스트> 쪽으로 가고 있다.

윤자가 사실 이런 생활에 전혀 익숙하지 않거든요 그동안의 모습으로는. 근데 여기와서 너무 잘 지내더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불을 피고 텐트에서 자고 머리 안감아서 떡진 상태로 다니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 이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게 굉장히 좋다. 별난 사람들이 여기와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여기 와서 이런 감각들을 느끼고 변화를 느끼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거구나.

지금 우리가 하는게 비주류나 특이한 애들이 하는게 아니라, 유행을 최첨단 아닐까. 물론 두 발짝이나 앞서가면 안되지만 스텝을 잘 맞추어 가면, 이게 지금의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닐까. 그렇게 전환을 같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게 고맙다. 아마 나 혼자 시골에 가서 했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토대를 만들어주는 정훈이 있었고, 여기 감성을 불러주는 윤자가 있었다. 여기에 나의 시골생활의 경험이나 기술이 있고. 그래서 정말 묵찌빠 같은 느낌. 어느 하나 없었으면 성립할 수 없는. 이렇게 세명이 모였기에 지금 볼음도 불멍캠프가 열릴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 소중한 사람들이다.

Q.재미있게 잘 들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듣고 싶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좋고, 인터뷰하면서 어땠는지 소감도 좋아요.

 

 A 정훈 : 저는 한번 오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표주박 시장 갈 때 한겨울이었는데 아무리 남쪽이라고 해도 추워서 우려가 되었다. 특히나 두 살 아이를 데리고 가니까. 그런데 가고 나서 알았는데 거기도 사람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전환되었던 경험, 예상하지 못했던 관계맺음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고, 올해 볼음도 캠프를 할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떻게 아영하며 밖에서 생활할 수가 있나, 물도 안나오고 춥고 씻지도 못하는데’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볼음도에 집을 지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집이 아니어도 되는구나. 기존의 자기 경험에 가늠해서 어떤 걸 ‘할 수 있다 혹은 없다’ 라고 하는데 다른 감각을 맞닥뜨리면서 새로운 경험이나 방식을 장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과정이 불멍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런 걸 느껴보시면 좋겠다. 그래서 간소하게 들고 정말 한번 와 보시면 좋겠다.

 A 윤자 :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것은 너무 낯설고 불편하기 때문에 훅 들어오는 느낌. 몇주째 가고 있는데 매주가 다 신선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고. 그래서 불편한 게 아니라,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즐거울 수 있더라. 짧게라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터뷰하면서는 내가 생각보다 이 두사람을 되게 믿고 의지하고 있구나 같이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구나 싶었다. 그런 서로에 대한 마음들을 앞으로 잘 얘기해가면서 하고 싶다. 둘이어서 고맙고.

이야기하면서 그때그때가 떠오르는 것도 좋았다.

A 단디 : 두 분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저는 사실 좀 걱정되는게 너무 사람 많을까봐 걱정이다. 작은 규모이다보니 사람이 너무 많으면 쾌적하게 지내기 어려울 수 있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우리 입장에서 너무 많은 손님들이 한꺼번에 오면 오는 이들이 반가운 게 아니라 ‘아이구 또 왔네’ 이런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아 나도 가야되는데, 힙한 느낌의 저 캠프 놓칠 수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도 자제하시라! 꼭 오고 싶은 사람만 오시고, 갈까말까 이런 고민이 들면 안오셔도 됩니다.

우리는 천천히 갈꺼다.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 만들어갈 거라, 꼭 5월에 오지 않아도 된다. 기분전환하러 해외여행 가는 것처럼 언제든 마음으로 올 수도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혹은 여기와서 오랫동안 지낼 수도 있고 곳. 도시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의 고향처럼 정서적으로 연결 되어있는 장소. 와서 충분히 회복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수도 있는. 내가 지내거나 머물 수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서, 이곳이 계속 돌보아지고 관계가 맺어지고, 그렇게 천천히 만들어가고 싶다. 다른 이들이 일구고 있는 영역이 자기에게 하나 연결되어있다는 감각, 그걸 사람들이 가지면 좋겠다. 그 시작이 5월캠프라고 생각한다. 

A 윤자 : 인스타있어요 캠프불멍. 페이스북은 있긴한데, 캠프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만 초대하는 비공개 그룹이다. 인스타는 누구나 볼 수 있다. 많이 오세요.

진선 : 마지막으로 우리도 소감을 전하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이야기를 듣는데, 그 간에 쌓여온 역사 위에서 지금 볼음도 캠프가 드러나고 있구나 싶었다. 셋이 서로 애정하고 의지하는 것처럼 보여서 좋더라. 불멍을 통해 셋이 또 어떤 관계로 나아갈지, 묵찌빠의 앞으로의 케미가 더 기대된다. 셋의 이야기를 들으며 좀더 그림이 그려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다정 : 인터뷰 처음 할 때는 볼음도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질문 하나하나 생각하면서는, 볼음도 팀으로 모인 한사람 한사람 이야기를 듣는 자리구나 싶었나. 팀으로 묶여있지만 묵찌빠처럼, 각자 발신하는 이야기들. 그렇게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었다. 물건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다는 얘기, 시장을 통해 하고자하는 것 재미있게 들려왔다. 그런 터전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

저도 5월 중에 갈 예정인데, 난 단디가 막아도 갈거다. 가서 좀 눌러있다가 올 예정인데 가서 얼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