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면 정말 좋아요? by_김윤희

2020. 10. 23. 20:38동네살이&일상/기고글

 내가 우리동네사람들(이하 우동사)에 산다고 하면 자주 듣는 얘기가 대단하다라는 것이다. 뭐가 대단할까? 얘기를 들어보면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은 불편하다라는 전제가 있는 것 같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외에 삶, 살이에 대해서는 그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자주 들어온다. 그리고 자주 질문 듣는 것은 안 싸우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갈등도 많고 눈물 흘리기도 하고 하찮은 일로 얼굴 붉어질 일도 많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왜 같이 사는가? 라고 한다면 가족이 아니라도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 관계망, 이 든든함이 너무 좋다고 자랑하고 만다. 사람들이 대단하네요.” (뭐가 대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라고 얘기하면 나도 속으로 대답한다. ‘맞아요, 이 관계가 정말 대단해요.’

사진 1.  동네 친구의 생일잔치

 우동사에 와서 같이 살고 부대끼면서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았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한 집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보고 같이 밥을 먹고 딱히 약속을 잡지 않아도 부엌 식탁에 한둘 나와 앉으며 시작되는 이야기가 정말 즐겁다. ‘관계가 최고의 복지망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내가 실감하게 된 것은 우동사에 오면서부터다. 내가 마음으로 괴로운 일이 있을 때나 그저 외로울 때 나를 채워준 것은 방문 밖을 나서면 시도 때도 없이 만나게 되는 이 식구들이었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 동네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 채워주는 부분이 새롭다. 우동사에는 규칙이 없다. 규칙이 없는 대신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눈다. 화장실 하수구에 머리카락이 쌓인다는 것이 이야기의 주제라면 누가 머리카락을 치우나, 어떻게 치울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정말 어떤 상태가 되어있길 바라는지 내 마음은 어떤지에 대해 집중해서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왜들 이러나, 추진력이 없다 맨날 마음 얘기만 한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나도 점점 물들어 갔다.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에 집중하게 되었고 당연하다’ ‘이래야 한다.’라는 전제에서 생겨났던 화나 짜증에서 정말 나는 저 사람에게 화내고 싶나? 잘 지내고 싶은 것인가? 같은 질문으로 마음의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그렇게 나누는 대화 속에서 삶에서 외적 조건이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내적인 변화가 커졌다. 일상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다 보니 삶의 다양한 부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 덕분이었다.

사진 2.  거실 테이블에 모여 이야기하기

 제일 먼저 불안이 줄어들었다.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할지, 얼마나 모아야 할지,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청약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의 고민에서 점점 멀어졌다. 예전에는 이런 고민이 많았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고민이 해결된 적이 없었다. 청약을 넣으면 그다음엔 당첨이 고민이고 분양이 고민이고 어느 지역으로 갈지가 고민이고 등등 늘 비교하고 불안하고 이것을 하면 저것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늘 뭔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 이 순간이 마땅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모이면 그런 얘기들을 했던 것 같다. 주식 얘기를 하다 땅투기에 대해 얘기하고 누구는 어디 분양받았는데 차는 뭐로 바꿨는데 이런 얘기를 주로 하고 살았다. 나는 가진 게 없는데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서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우동사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단지 공간을 쉐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안에 대해서 나누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이 변화해 갔다. 견디면서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인생의 갭이어(gap year)를 보낼 때도 있고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런 것들을 서로 두둔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안심할 수 있는 환경 그 자체가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사진 3.  집 정리하고 나누기 벼룩시장

 내가 경험하거나 잠깐씩 구경하면서 보게 되는 주거공동체의 모습들은 비슷비슷하다. 자신들의 축제가 있고 같이 여행을 가고 동네 벼룩시장이 종종 열리고 같이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눈다. 규칙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나에게 우동사라고 하면 아무리 느리더라도 좋은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발생하는 누군가 참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참는 사람 없이 살아가는 곳이다. 충분히 듣고 충분히 얘기하는 환경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공동체라는 이름에 자신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정말 좋아요.

 

* 이 글은 2020년 10월 인천 서구 마을공동체 사례집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