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기행 2

2019. 11. 12. 11:58유라시아학당/2018 블라디보스토크기행

블라디보스토크 기행 2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명한 조지아 음식점 '수프라(Супра)'에서 점심을 먹었다. 블라디가 2,3년 새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린 탓에 비수기임에도 손님의 절반이 한국사람들이다. 이미 한국어 메뉴판까지 갖춰 두었다. 가이드북의 호평과는 달리 몰려드는 관광객을 받아내기 바쁜 그저그런 곳이 되어버렸을까 하는 염려도 잠시, 가게를 오픈하며 종업원들이 신나는 코카서스풍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그 기운을 담아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인테리어도, 음식도 나쁘지 않다. 종업원들의 활기와 정성이 느껴진다. 옆 테이블에는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모여 일행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를 벌인다. 구 소련 영토였던 중앙아시아의 작은 국가 조지아의 흥이 시베리아를 건너 동쪽끝까지 닿았다.

 



점심을 먹고 발렌티나와 만났다. 고맙게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남쪽에 위치한 루스키섬을 안내해주기로 했다. 그녀의 차를 타고 시내의 남북을 잇는 금각교와 시내와 루스키섬을 잇는 블라디보스토크 대교를 지나 섬을 반바퀴 돌았다. 해안이 멋지다. 봄가을에 왔다면 트레킹하기에 제격이겠다. 발렌티나의 얘기로는 여름에 절벽에서 다이빙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맑고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킹크랩과 곰새우는 블라디의 특산물이다.

루스키섬은 러시아의 군사요새가 있는 곳이다. 지금은 태평양함대가 주둔하고 있는데 이곳이 군항으로 가장 주목받았던 때는 19세기 말이였다.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가 이곳에 군사기지와 함께 극동함대를 설치한다. 극동함대는 중국에서 조차한 뤼순항의 제1 태평양 함대와 함께 동북아를 지키는 주요 전력이었다. 당시 러시아함대는 무적이라 평가받았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한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신흥세력 일본이 승리하자 동북아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꺾이고 일본은 조선을 병합함에 이어 러시아가 차지했던 만주일대까지 세력권에 두게 되었다. 당시 조선은 고종이 러시아에 기대 독립을 유지하려 했지만 러일전쟁의 결과로 판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어져 버린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러시아가 1860년 조선과 국경을 맞댄 뒤 불과 40여 년만에 조선의 운명을 결정짓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러일전쟁에 패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소련이 되어 반세기만에 일본을 몰아내고 반도의 북쪽까지 영향력을 확대한다. 이번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을 대신해 신흥 강자로 부상한 미국이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섰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며 영향력을 다시 상실하는 듯 하였으나 러시아는 여전히 한반도 균형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가 숨을 고르는 동안 부상한 중국이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니 지난 150년간 한반도를 둘러쌓고 진행되어 온 힘의 충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루스키섬을 품고 있는 동해의 겨울바다는 맑고 청아하다. 이 해안을 따라 하염없이 걸으면 원산이, 더 내려가면 강릉이 나올테다. 과거 발해가 대일본 교역로로 활용하던 길의 기점이 여기서 남으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크라스키노(Краскино, 발해의 용천부)이다. 북한까지와는 직선거리로 130여 킬로미터다. 해안가에는 북한에서 떠내려 온 듯한 낡은 목선도 있다. 여행사에서는 블라디를 한국에서 가까운 유럽이라고 소개하며 모객을 하지만 이곳에 새겨진 자취를 살피노라면 우리와 동떨어진 낯선 여행지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온 토대이자 미래를 모색하는 실마리를 담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겉껍질은 러시아로 바뀌었을망정 속살은 여전히 아시아를 품고 있다.

 



루스키섬에는 극동연방대학(Far Eastern Federal Univercity, Д.В.Ф.У)이 있다. 최초로 한국학 단과대학이 들어선 곳이다. 마침 발렌티나도 20여 년 전 한국학 대학에서 한국경제를 전공했단다. 초승달 모양의 만을 따라 배치한 캠퍼스 자체가 볼거리이다. 2012년 APEC회담을 시작으로 매년 가을에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빼어난 경치를 바라보며 러시아어를 익히고, 동북아를 조망하는 꿈을 그려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건물 내부를 보고 싶었으나 외부인은 건물 출입이 안된단다. 어학연수반을 알아보겠다는 핑계로 졸업생 발렌티나의 힘을 빌려​볼까 했지만 역시나 거절당했다.

 



돌아오는 길에 발렌티나가 깜짝 제안을 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하루 자고 가면 어떻겠냔다. 원한다고 쉽게 얻어질 제안이 아니기에 즉시 오케이 했다. 러시아 가족의 생활상과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멋진 기회다. 저녁식사는 발렌티나와 남편 유라, 큰딸 베로니카와 막내 아르테미, 그리고 우리 팀이 함께 했다. 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은 아르메니아식 케밥과 포도잎에 고기를 싼 음식, 구운감자, 밥상에 빼놓지 않고 나오는 샤워크림, 꿀, 칠리소스가 차려졌다. 느끼해질만하면 맥주가 입맛을 원점으로 되돌려 주었다. 한국음식에 길들여진 내가 먹기에도 손색없는 밥상이다.

 



식사를 마치자 베로니카의 공연이 이어졌다. 가수를 꿈꾼다는 베로니카는 노래를 부르고, 발레실력을 뽐내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무엇보다 눈빛이 강렬하다. 눈빛이 강렬한 사람은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마련이다. 어쩌면 언젠가 TV에 나온 베로니카를 보고 '아, 나 저 가수 아는데!'를 외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생 아르테미는 어설피 배운 태권도를 음악에 맞춰 시연한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도 귀엽다. 6살 다운 기운이다. 9시반이 되니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이를 닦고 잠자리에 든다. 그런 두 아이가 무척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 1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가 유창했더라면 훨씬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구글의 힘을 빌어 대화를 이어갔다.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를 부패로 꼽는 두 부부는 러시아를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한국에서 경험한 좋은 인상의 장면들을 이야기하며 한국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지 않냐고 한다. 한국에도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건강한 면보다 아픈 쪽이 신경쓰이는 법이다. 희망이 없다고 여겨 제 나라를 떠나려는 이들 역시도 어떤 의미에선 난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진정 원하는 것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것'일테다.

불합리한 현실에 눈을 감으려고 한다면서도 명상, 지속가능한 농법, 대안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며 아이들의 장래를 고민하는 이 부부가 듬직하다. 생면불식이었던 사람들이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니 새삼 마음이 따뜻해지고 희망에 젖는다. 나라, 민족이라는 관념을 넘어 보면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지구를 가꿔가는데 관심이 있다는 걸 재차 확인하는 자리였다.

자리를 파하고서도 여운이 남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가족이 다시 한국에 온다면 볼음도에 초대하고 싶다 했다. 왠지 볼음도에 어울릴 거 같은 가족이다. 역시나 흔쾌히 응해주었다. 꽤 길고도 깊은 하루였다.

 

2018.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