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나눔의 기록] 함께 <자신을 알기 위한 코스>에 다녀 온 반야스쿨 친구들

2021. 8. 9. 19:05동네살이&일상/겁없는 구겁들

여러분 안녕! 오랜만에 구겁들 다정이야.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 작년 한 해 동안 일본 스즈카 애즈원 커뮤니티에 유학 가 있던 정인이도 돌아왔고, 90년대생이 정인, 다정, 수정 (=구겁들) 밖에 없던 동네가 <반야스쿨>을 시작하며 기운찬 90년대생들로 가득해졌어. '90년대생 겁쟁이들'에서 '90년대생 겁 없는 친구들'로 <구겁들>의 의미도 바뀌었고. (겁쟁이들의 염원을 담아봤달까?) 여전히 구겁들끼리 모여서 놀고, 맛있는 거 먹고, 이야기하고, 작당하며 지내고 있어. 

*반야스쿨 : 우리동네사람들에서 작년 11월부터 20-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프로그램. 함께 공동주거 생활을 하며,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풍요로운 관계의 실현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현재 두 집에 총 11명이 생활 중이다. 이번에 함께 이야기 나눈 경리, 슬기, 다정, 수정은 작년 겨울부터 반야스쿨 프로그램으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올해 6월 말 동네에서 <자신을 알기 위한 코스>가 열렸어. 반야스쿨 멤버 중 다정, 수정, 경리, 슬기가 코스에 함께 참여했는데, 다녀오고 나서 어땠는지 정인이가 들으면서 너무 재미있었대. 참여한 우리도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고.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끼리만 나누고 끝나기 아쉬운 기분이 들었어. 재밌고 솔직한 이야기들도, 뭐든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 관계도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기고. 그래서 앞으로 종종 이런 이야기 나눔을 기록하고 전해보려고 해. 이런 [이야기 나눔의 기록]이 사람 사이의 관계, 이야기 나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전해지면 좋겠어. 이번 기록은 <자신을 알기 위한 코스>에 다녀온 반야스쿨 멤버 경리, 슬기, 다정, 수정과 말 걸어 준 정인이 함께 나눈 [이야기 나눔의 기록]이야.

*자신을 알기 위한 코스 : 애즈원 커뮤니티 사이엔즈 스쿨에서 마련하는 기초 코스 중 하나.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 · ​​감정 등 자기 관찰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가진다. 자신의 사례를 솔직하게 발표하면서 고정, 단정 없이 즐겁게 깨달아 가고, 자신의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실현해 가기 위한 장이다. 

 

사진 찍으러 허암지 가는 길. 정인, 다정, 경리.

 

2021년 7월 여름 어느 날

경리, 슬기, 정인, 수정, 다정이 함께 나눈 이야기 나눔의 기록.

 

정인 : 알기 코스에서도 편하게 얘기하고, 반야 하면서도 일상에서 있었던 것들을 더 편하게 얘기하게 되면서 정말 함께 생활하는 맛을 느끼고 있잖아. 근데 지금 또래 친구들 보면, 친구 사이에서도 예의가 있어야 된다라든지, 이런 말은 할 수 없다라든지, 아니면 싫어할 것 같으니까 말 못 한다라든지 이런 게 꽤 많은 것 같은데. 너희들은 어떻게 얘기하며 지내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뭐가 편한지 이런 것들이 나눠지면 좋겠다 싶었어.

다정 : 근데 진짜 코스 하면서도 느꼈던 건데, 서로 더더더 허물없이 경계 없이 이야기하기 위해서도 자신을 아는 거구나 싶었어. 이번에 <알기 코스> 간 이유도 서로 더 그렇게 지내기 위해서 간 거구나. 자신을 잘 아는 만큼 더 허물없이, 경계 없이 이야기할 수 있구나. 그리고 서로 그렇게 지내는 만큼,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구나. 선순환하는 느낌.

정인 : 처음 반야스쿨 시작했을 때랑 비교해 보면 어때? 편함의 정도라고 해야 되나. 좀 더 편해진 것들?

수정 : 나는 진짜 처음보다 많이 편해진 것 같아. 반야스쿨 하기 전에 우동사에서 공동 주거했어도 언니들 눈치 본다거나, 너나 경계가 뚜렷했다거나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언제부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안일에 대해서도 ‘니 설거지, 내 설거지’ 이런 게 확 줄어든 것 같고. 옷도.. 옷장을 같이 써서 그런가. 옷도 점점 같이 입고 싶더라. 예전 같았으면 안 그랬을 텐데. 어제도 하루 옷 입고 갔어 말은 안 했지만. 서로 그렇게 지내니까 그냥 같이 입어도 되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복층에는 공유 옷장도 있고. 또.. 샤워하고 빨개 벗고 나오게 되고 뭐 이런 거? 

경리 : 진짜 스며들듯이 편해진 느낌. 

수정 : 맞아. 

경리 : 언제부터 확 편해졌다 이런 것도 잘 모르겠어. 그러네, 샤워하고 빨개 벗고 나오는 거. 301호 거실 화장실 문 열면 바로 위에 수건이랑 옷 걸어둘 수 있는 봉이 있어. 이때까지는 그냥 문 닫고 화장실 안에 갖고 와서, 다 씻고 나서 입었거든. 근데 알기코스 갔다 오고 나서는 그냥 문 열고 할 수 있는 걸 보면, 좀 더 편해져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정 : 김경리 팬티만 입고 잘 돌아다녀. 

수정 : 맞아 

정인 : 호중이 있을 때도? 

경리 : 호중이 있을 때도? 별로 개의치 않은 것 같은데

다정 : 장호중도 전혀 미동이 없는 거 같은데. 

경리 : 오히려 나는 요즘 혜정이가 나 팬티만 입고 다니면 아 김경리 또 왜 저래 할까 봐 (웃음) 

다정, 수정, 경리

 

다정 : 나는 생각하다 보니까 한슬기 떠올랐는데.

슬기 : 왜?

다정 : (웃음) 한슬기 입 뗐다.

수정 : 여기 없는 사람이란 말이야 한슬기.

*사전에 이번 이야기 나눔 때는 슬기는 말 안 하고 듣기만 하고 싶다고 했었음.

다정 : (웃음) 아무튼 슬기가 왜 생각났냐면. 슬기가 되게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반야스쿨 초반에도. 원래 되게 솔직하게 말하는 성격인데, 초반에 그런 슬기한테 내가 걸렸던 거야. 우리 작년 12월에 1박 2일 집중 탐구회 할 때, 집안일하는 거에 대해 슬기가 자기한테 있는 반응부터 솔직하게 다 꺼냈는데 그걸 듣고 내가 탁 걸렸던 거지. 슬기가 집안일 가지고 나한테 뭐라고 한다 이렇게 생각해서. 그래서 슬기랑 한참 데면데면했단 말이지. 사이가 좀 불편했어.

정인 : 데면데면했다고 너희?

다정 : 서로 불편한 게 있었어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근데 그러고 나서 딱히 슬기랑 풀려고 한 건 아닌데, 알기 코스 가기 직전에 동네에서 서로 뭐든지 이야기하는 쪽에 집중되는 분위기가 있었을 때, 그 속에 지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슬기 얘기가 정말 들리게 된 거야. 네이버 카페에도 슬기가 반야스쿨 멤버 한 명, 한 명 이름 거론하면서(웃음) 멤버들한테 있었던 마음 완전 솔직하게 다 꺼내서 썼잖아. 날 것 그대로. 그 글 보고서, 아 슬기는 그냥 이런 거 다 꺼내 주는구나 싶었어. 그냥 자기 있는 거 다 꺼내 주는 거구나. 숨기는 거 없이. 그리고 나도 슬기 얘기를 그렇게 볼 수 있게 됐구나 하고 최근에 새롭게 생각했어. 누구를 비난한다거나, 나를 나쁘게 본다거나 그런 쪽이 아니라 그냥 슬기가 슬기 얘기하는 거구나 이렇게. 그냥 그뿐이구나.

그리고 그쯤 특히 재밌었던 게, 슬기가 자기 기분을 있는 그대로 그냥 꺼내고 그대로 친구들한테 전하는 부분. 예를 들면, 저번에 로드스꼴라 친구들 맞이용으로 카레를 끓였어. 그다음 날 먹을 걸 준비한 건데 카레가 있으면 반야 친구들이 먹을 것 같아서 고민된다고 슬기가 나한테 카톡으로 물어봤단 말이야. “다정아 로드스꼴라 친구들 먹을 카레 한 20인분 충분할까? 반야 친구들이 카레 있으면 먹을 것 같은데 로드스꼴라 친구들도 충분히 주고 싶어서.”  이런 있는 거 그대로 쭉쭉 꺼내서 나랑 얘기를 하다가, '그래 반야 친구들한테 로드스꼴라 친구들이 우선 충분히 먹었으면 좋겠으니까, 나중에 남으면 먹어달라고 하자.' 이렇게 얘기가 됐어. 그때 나한테는 ‘지금 반야친구들이 안 먹었으면 좋겠어.’가 중점으로 남았었어. 그래서 ‘지금 반야 친구들이 안 먹었으면 좋겠어’를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카톡으로 전달했으면 그 부분만 정리해서 전했을 거야. 근데 슬기는 그 기분부터, 생각의 흐름을 줄줄줄 카톡에 다 쓴 거야.

“카레를 만들었는데 20인분 양이될지 가늠이 안 되네. 일단 로드스꼴라 친구들이 충분히 먹었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어서 카레는 눈으로만 봐주면 좋겠다~ 반야 친구들은 나중에 남게 된다면 먹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반야친구들한테는 다음에라도 만들어서 주고 싶다. 카레 정말 맛있거든!” 이렇게 그냥 통째로 다 전달했어 카톡으로. 그거 보고선 ‘아~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안 먹었으면 좋겠어’ 보다 이 전체가 다 전달되니까 정확하다. 그때 슬기가 그렇게 얘기해 주는 게 다르게 들리고 좋더라고. 그때 그 장면에서 나는 되게 감명받았어. 그래서 슬기한테도 바로 그렇게 얘기했다. 너가 그렇게 카톡에 얘기한 거 보고 꽤 인상 깊었다고. 정확하다고 생각했다고. 나였으면 다르게 전달했을 것 같다고. 그러고 나서 슬기랑 같이 알기 코스 들어갔거든. 가서도 슬기가... 진짜 그때는 더 여기에(머리를 가리키며) 힘 풀리는 상태로 얘기해주니까 좋더라.

*로드스꼴라 : 우동사에 방문했던 대안학교.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는 여행학교.

 

정인 : 나사가 풀렸어?

다정 : 고삐가 풀렸지. (웃음)

수정 : 나는 큰 차이 못 느꼈는데 (웃음) 내 앞에선 늘 고삐가 풀려 있어.

슬기 : 맞아. 고삐도 쥐어 줬잖아 내가.

수정 : 아는 척 그거 말하는 거야?

슬기 : 아니. 늘 쥐어줬잖아 내가.

경리 : 걍 하는 말 같은데. (웃음)

슬기 : 내 말에 의미를 붙이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

수정 : 이해하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 

다정 : 어 그냥 받아들여야 해 슬기 말은. 

수정 : 말이 아니라 마음을 듣는다는 거 연습하기 좋은 사람.

다정 : 슬기 말은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이렇게 놀면 돼 (웃음)

정인 : 아는 척하는 건 어떤 얘기였어?

수정 : 한슬기가 코스 끝나고도 몇 번 말했고, 예전에도 몇 번 말했었는데. 나랑 같이 코스 들어오는 게 좀 망설여지는 것도 있었대. 내가 걸렸대. 근데 그게 내가 말을 막는다. 말을 끊고 자기 얘기를 한다. 뭐 그리고 그게 아는 척이랑 연결됐나? 몰라.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는 척하는 것 같다고,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듣기 싫다고 코스 둘째 날인가 얘기했어. 맨 처음엔 듣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근데 점점 너무 속상한 거야.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는데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겉으로는 “음 슬기가..^^ 그렇게 생각했지~” 이랬지. 근데 속으로는 ‘윽. 마상..’

점점 이걸 숨길 수가 없어가지고 한슬기 쪽은 보지도 않고.(웃음) 한동안 피했어 한동안. 쉬는 시간에도 한슬기가 오면은 막 이렇게 피하고, 안 볼 거라 그러고. 사실화가 되어 있으니까 나도. 내가 엄청 잘못한 것 같은 거야 슬기의 그 얘기가.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잘못한 거 같으니까. 그러다가 결과적으로는 슬기랑 풀었다기보다, 코스에 집중하면서 슬슬슬 그냥 풀렸어. 그 장면을 보고 슬기가 그렇게 해석한 거구나. 나도 그 장면을 보고 내가 어땠다라고 해석한 거구나. 이렇게 좀 떨어졌던 것 같아. ‘그렇게 말한 건 내가 잘못했다, 내가 구리다’ 이렇게 딱 붙어 있었는데. 정말 그 말이 구렸다기보다, 각자 그렇게 보는 거구나. 슬기는 어떤 마음에서 그런 말이 듣기 싫어졌을까? 이런 궁금함도 생기고. 나중에 슬기랑 얘기해보니까 더 심층적이더만. 내가 말을 끊는다 이런 것보다, 내가 중간에 말을 하면 슬기가 그쪽에 더 무게를 둬서 듣는다고 하더라. 내가 생각했던 구린 이유랑, 슬기가 내 말 듣기 싫었던 이유가 달랐어.

정인 : 예를 들어 기억나는 거 있어? 수정이랑 같이 얘기할 때 너가 말하고 싶었는데 막혔던 그런 장면이 있어?

슬기 : 아는 척한다. ‘잘 모르면서 내 마음 아는 척하지 마.’ 였던 거 같아. 내 마음은 이런 데, 상대는 상대 생각으로 그렇게 파악을 하잖아? 그냥 ‘그런 거 아닌데. 그렇게 말하지 마.’ 였던 거 같아.

수정 : 나는 슬기하고 이야기할 때 “그거 그런 거야? 그래서 그랬어?” 이렇게 그냥 물어보는 거다?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건가? 추측. 그게 아니라면, 아니 그게 아닌데~ 하고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건데, 내가 그렇게 말하면 슬기는 뭔가 있나 봐. 편한 느낌이 아닌..

슬기 : 상대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아닌데 그쪽으로 확실히 단정 짓는 거 같아서 나는 해명을 하게 되는 상태?

모두 : 아~~

슬기 :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나를 보고 있는 거 같은... 수정이가 물어보는 건지는 오늘 처음 알았어.

모두 : ㅋㅋㅋㅋㅋㅋ

수정 : 그럼 뭐라고 생각했어? 

슬기 : 말의 형식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질문이라고 안 받아들여지고, 수정이가 그렇게 생각한 거에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명하게 됐어.

정인 :  같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슬기가 얘기했을 때  ‘그거 그런 거야?’ 이렇게 얘기하면 그게 수정이가 너를  ‘그런 거야.’ 라고 하는 느낌이야?

슬기 : 응. 사람이 여러 명 있을 때는 그게 더 크게 받아들여져서 “그게 아니고” 하고 해명하게 돼.

수정 : 진짜 기억에도 잘 남아 있지 않은 장면인데 나한테는. 진짜 뭐가 일어나는지 모르는구나 저 사람 안에서는.

정인 : 특히 뭐 연구회 하거나 미팅하거나 이런 자리에서? 아니면 그냥 평소에?

슬기 : 똑같은 말을 해도 그게 미팅이나 연구회 자리면 좀 더 크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사람들도 많고. 거기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가 좀 더 있는 거 같고.

다정 : 사람 많은 자리에서 슬기가 어떤 얘기했는데, 수정이가 “아 이거 이래서 이런 거야?”라고 하면, 슬기가 정말 그래서 그런 것 같은 쪽으로 사람들이 이해할까 봐? 슬기도 그거에 영향을 받고. 아 정말 나 그랬나? 이렇게... 우선 슬기 쪽이 그렇게 되는 데서 ‘남수정 그냥 하지 마’ 이렇게 하고 싶어지는 거려나.

수정 : 입을 막는 거지.

경리 : 슬기 우리 윤독회 할 때 한 번 방에 들어갔다 나온 적 있었잖아. 그때 슬기가 말 조리 있게 하는 거에 대해 스스로 뭐가 있었잖아. 그런 거랑 조금 연관이 있으려나.

슬기 : 그건 잘...

경리 : 아 지금 이런 상황인 건가 (웃음)

모두 : ㅋㅋㅋㅋㅋ

슬기 : 아니 바로 이거야! 경리가 물어봤을 때는 별로 안 그랬는데, 사람들이 “그래 이런 상황이야” 하니까 해명하게 되는. 난 아닌 거 같은데.. 지금 바로 이 상황인 거 같아.

경리 : 더 사람들이 동조하게 돼서 진짜 그렇게 되는 거 같은.

다정 : 그러게

정인 : 그 뒤에 더 말을 못 하게 되는 그런 게 꽤 크겠다. 나는 그런 거 아닌데. 

수정

 

경리 : 난 좀 편해졌다고 생각한 때가 그것도 있었어. 다정이한테. 다른 친구들에겐 오히려 마음을 좀 꺼내놓을 수 있는데, 다정이한테 유독 못 꺼내겠는 마음이랄까. 내가 다정이한테 기대하고 있는 어떤 모습이 오래되기도 했고, 그래서 못 꺼내기도 하고. 이 마음 꺼내면 뭔가...(웃음)  다정이가 미팅에서 가만히 이렇게 앉아 있다가, 눈 감고 생각하다 말 한 번 하면 엄청 멋있는 말을 하는 거야. (웃음)

모두 : ㅋㅋㅋㅋㅋㅋ

경리 : 그때 마음속으로 ‘야 남다정. 뭔데 저렇게 멋있는 척 해’ 이러고 있었다. 뭔가 질투 나기도 하고. '남다정 한 번씩 되게 맞는 말 한다.' 이런 거. 그럴 때 “야 질투 난다고.” 그런 거 꺼냈었지. 두 번 정도 꺼냈었지.

다정 : ㅎㅎㅎ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들으니까 좋다. 

정인 : 속 시원해?

다정 : 응 속 시원해. 오늘 이렇게 딱 꺼내서 들으니까 더 좋다.

정인 : 어떤 기대가 있었어?

경리 : 기대? 다정이한테? 다정이한테는.. ‘다정이가 나누기를 잘한다. 나누기를 잘 듣는다.’ 이런 이미지가 있었고. 그래서 최근에 다정이가 예민해졌었을 때 좀 어려웠어. 뭔가 파동 같은 게 달라진 느낌. 표정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래서 다정이한테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면 받아줄 수 있는 상태일까? 내가 얘기하면 다정이 안에서 뭔가 탁 걸려서, 다정이 상태를 좀 더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건 아닐까? 그냥 별 얘기는 아니지만,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다정이의 상태에 내가 영향을 주게 되는 거 아닐까? 이런 걱정.

정인 : 둘이 방 같이 쓰면서 그런 얘기도 못 했구나

모두 : ㅎㅎㅎㅎㅎ

경리 : 참내 재수 없어ㅋㅋㅋ

정인 : 야 너네 뭐 하고 사냐ㅋㅋㅋ어이없다

수정 : 아 김정인 겁나ㅋㅋㅋ

다정 : 뭐하긴 둘 다 누워서 방구나 붕붕 뀌지~

경리 : 그래~~

슬기 : 경리. 나랑 방 쓰면서는 불편하지 않았어? 

정인 : 너희 둘도 방 같이 썼었지?

경리 : 슬기랑도 처음에, 동생한테 나는 언니 같아야 된다. 이런 것도 있었고.

슬기 : 내가 동생인 줄 알았지? 

경리 : 너 동생이잖아.

슬기 : 여기엔 내가 10일 더 일찍 왔어.

경리 : 그럼 동생 선배.

수정 : 한슬기 선배질 하는 거 보고 싶네.

슬기 : (웃음) 자, 다음 사람?

 

정인 : 알기 코스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왔어?

경리 : 알기 코스에서는 얘기 안 했어. 아닌가? 아 금자 언니한테는 산책하면서 얘기했던 것 같은데. 응. 그날도 그랬었나 봐. 남다정 그렇게 앉아가지고 눈 감고 있다가... 아니 그거야. 나도 저런 말할 수 있는데. 나도 저런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다정이 말했다. 이런 거. 다정이가 조리 있게, 나도 속으로 하고 있던 생각을 남다정이 멋있게 말한다. 멋있어 보인다.

수정 : 오... 들으면서 이해가 안 돼. 남다정이 그렇게 멋있다고? 

모두 : ㅋㅋㅋㅋㅋ

수정 : 다정이 눈 감고 있었나? 전혀 보질 않으니까ㅋㅋ

다정 : 나도 경리한테 이런 얘기 들으니까 진짜 의외였다? 진짜 의외인 거랑, 얘기 들을 때마다 되게 반가워. 좋아. 이제 서로 더 꺼내고 얘기하면서 지내는구나. 반야 초반만 해도, 있는 마음들 덮는 줄도 모르고 덮고 살았구나 싶었어. 경리나 다른 친구들한테 순간순간 있었던 마음들 덮었구나. ‘이런 건 당연히 얘기할 수 없지’ 이렇게. 덮는다는 의식도 없이 그냥 덮고 살았구나.

정인 : 예를 들면?

다정 : 3월쯤 우리 다시 방 배치됐을 때 내가 반응이 있었거든. ‘방 배치 왜 이따구로 한 거야?!’ 이런 반응이 있었어.(웃음) 왜 우리한테 제대로 안 물어보고 이렇게 했지? 스텝들 마음대로 정했다, 통보받았다고 생각했어. 방 배치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 싶다고 얘기할 생각도 못 하고. 그래서 그냥 반야 멤버들끼리만 막 얘기했지. 그때 내가 경리랑 룸메이트 된 건 괜찮았는데, 쓰던 1인실을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컸어. 근데 슬기가 1인실로 배치된 거야. 그거보고 맘에 안 들어서 괜히 슬기한테 불똥 튀고. “야 한슬기 너 쁘치미 가서는 1인실 쓰고 싶다고 말했냐! 우리 한테는 아닌 척해놓고~” 이렇게. 

슬기 : 앞뒤가 다르다? (웃음)

다정 : 어ㅋㅋㅋ 뒤에서는 1인실 쓰고 싶다고 말했냐! 이런. 나는 1인실 쓰고 싶다고 말을 했었거든 스텝들한테. 그때 경리랑 방 쓰는 건 괜찮은데, 한편으로는 걱정됐던 것들이 있었던 거야. 나 요즘 되게 상태 안 좋은데 방 같이 쓰는 게 괜찮을까? 경리한테 내 이런 상태를 드러내 보여도 괜찮을까? 이런 걱정도 있었고. 또 그때는 경리가 반야 지내면서 아직 완전히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새로운 멤버들 들어오는 것도 그렇고... 근데 그럴 때 경리가 눈을 이렇게(눈에 힘을 주고) 하면서 말하면, 힘줘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뭔가 불편하다. (웃음) 이런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었어. 나중에 경리한테 말하기도 했어. 

슬기 : 한번 보여줘 힘주는 거.(웃음)

수정 : 나 따라 할 수 있어

경리 : 진짜?

수정 : 눈썹 이렇게가 아니라 이렇게. 아 갑자기 왜 따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더라. (열심히 표정 묘사)

경리 : 아 그래?

 

다정 : 경리가 눈에 이렇게 힘들어 갈 때 나는 확 쪼는 거야. 내용이 별건 아니지만 경리가 뭔가 힘줘서 말하는 것 같을 때 무서워지는. 뭔가 이렇게(한 걸음 물러서는 제스처) 힘 받는 거 같은 기분이 있었는데. 경리랑 방 쓰는 것도 경리랑 지내는 거니까, “지낼 때 그런 부분이 걸려서 좀 염려돼. 경리가 그러는 거 보면 내가 이런 반응이 있어서.”라는 말을 못 하고, 혼자서 마음에서 복닥복닥... 이러고 있었지. 말할 발상도 없었어.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말하면 경리가 기분 나빠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단순히 내 이런 기분을 전달하는 게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고. 이런 걸 다 말 못 하고 있으니까, 내 쪽에선 더 반응이 있었지. 그러니까 괜히 방 배치 한 스텝들한테, ‘왜 이따구로!’ 이렇게 화살이 가고. 그러다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 경리랑 말을 했다? 근데 얘기가 잘 된 거야. 내 얘길 듣고 경리가, ‘왜 힘줘서 말하게 될까’에 대한 경리가 추측하는 자신의 배경도 듣고 하니까 이해가 됐어. 경리의 맥락이 있었거든. 경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엄마랑 친척 언니들 사이에서의 경험이나, 힘줘서 말하지 않으면 경리 얘기가 잘 안 들리는 환경이나. 그런 거 들으니까 경리가 이해가 되고 뭔가 스르르 풀렸어. 자연스럽게 경리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풀어진 게 신기했어. 말 못 하고 있으니까 힘들었구나 싶었지. 말하고 나니까 가볍고 자연스럽게 풀리는데. 그리고 말하고 나니까, 경리가 '힘줘서 말한다.'라고 내 쪽에서 파악한 거구나 하고 좀 떨어지고.

정인 : 응 그러게. 너네 연구회나 미팅에서는 뭘 얘기하는 거야?

수정 : (웃음) 예의 차리지 뭐.

다정 : 우리 한참 예의 차렸지~~

수정 : 근데 알기 코스 갔다 오니까 확실히 좀 입 풀린 거 같지 않아? 난 좀 입이 풀렸어. 진짜 자기 생각이라는 걸 모르니까 말하기 어렵구나 싶어.

다정 : 맞아 맞아.

수정 : 자기가 생각한 걸 사실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생각한 게 사실이고 그걸 건드린다고 파악하니까, 분명 상대가 기분 나빠할 거다 이렇게. ‘사실 저건 정말 단점이다’ 뭐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다정 : 맞아 맞아.

 

정인 : 알기 코스 내용적으로는 어땠어? 테마는 어떤 느낌이었어? <자신의 독자적 회로> 얘기도 나오고 그러잖아. 그런 내용도 처음 접해보는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들어왔을까 궁금하다.

경리 : 세미나 때 했던 기반이 있다는 자각도 없이 그냥 처음부터 한 것 같았어. 6박 7일 동안 아무도 대답 안 할 때도 있고, 얘기 안 할 때도 있고, 침묵 속에서 지루할 때도 있지만. 계속 내 지력을 쓰게 하는, 머리를 스스로 쓰게 하는...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구나 이런 느낌.  들렸어?

*애즈원 세미나 : <자신을 알기 위한 코스> 전 단계의 기초코스. 자신을 알고, 인생을 알고, 사회를 알기 위한 코스이며 자신을 알고, 정말로 바라는 인생, 이치에 맞는 사회의 모습을 찾아내는 기회로서 마련된 장.

정인 : 들렸어 들렸어. (웃음)

슬기 : 정말 그 침묵이 되게 좋았어. 전에는 애즈원 미팅이나 이런 장에서 침묵 있으면 다른 사람들 계속 둘러보고 그랬는데. 

정인 : 견디기 힘들었어?

슬기 : 견디기 힘들다기보다는 어색한 거 같은데. 이래도 되나 나 혼자 눈치 보고 긴장하는 게 있었는데, 이번엔 그 침묵 시간에 다들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었어.

정인 : 그러게. 이번에 너도 생각했어?

슬기 : 당연하지!

모두 : ㅋㅋㅋㅋㅋㅋ

슬기 : 근데 질문으로 던지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된다'가 있어서 답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그냥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잘 나오는데. 정인이가 처음 질문 던졌을 때는 대답의 정석 같은 느낌으로 답해야 될 거 같은.. 

정인 : 약간 부담스러워?

슬기 : 부담도 있고. 그러니까 뇌도 잘 안 굴러가는 거 같고.

수정 : 긴장해서

슬기 : 응응. 이 질문에 대답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다정 : 얘기를 듣다 보니까, 정말 자기 생각인 게 분명하면 뭐든지 말할 수 있어지는 거 같다? 진짜 가볍게 “난 이랬어.” 이렇게. “내가 그렇게 느낀다.” 보다 “너가 그렇잖아. 그걸 내가 알았어(진지)” 이렇게 될 때 무거워지는 거 같아. ‘아 저거 좀 별론데, 단점인데.’라고 생각할 때,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가 분명하지 않고 정말 저 사람이 그런 것 같으면 더 무겁게 말하게 되는 거 같아.

경리 : 맞아. 저 사람도 숨기고 있을 거야. 이런 느낌.

다정 : 어어  맞아. 그래서 ‘그걸 건들면 저 사람도 방어하게 될 거야.’라는 쪽으로 생각이 가는데. 그냥 내 쪽에서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하니까 훨씬 가볍게 되는.. 정말 저 사람이 그런 게 아니라, 내 쪽에서. 그러니까 나한테 부정적이라고 생각되는 얘기도 그냥 할 수 있게 되는 게 가볍고 좋구나 싶었어. 내가 느낀 이야기로서 가볍게.

이건 오노상 강연 들으면서도 생각했던 건데. 그 강연에서, 큰 가족으로서 사회를 그리잖아? 정말 같은 가족 같은 사이가 넓어져서, 큰 가족으로서의 사회. 큰 가족 같은 사회.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생판 남이 만나 가지고 그런 사이가 된다는 게 엄청난.. 지금으로서는 엄청난 일인 것 같았어.

정인 : 지금 현 사회로 생각했을 때는 엄청난 일.

다정 : 어. 그리고 그게 엄청난 회복인 것 같아서. 진짜 그렇게 하고 싶다. 친구들 한 명 한 명 다 그런 사이로 지내고 싶다.

 

경리 : 응. 진짜 반야에서 지낸 지 5개월 남짓했을 때부터 나는 엄청 편하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정말 괜찮다 이런 느낌. 아 나도 이렇게 빨리 열몇 명의 사람들과 이런 사이가 됐네? 이게 됐네? 이런 걸 느낄 때마다, 되게 벅찬 느낌도 들어. 내 곁에 사람들이 나와 이런 관계를 맺고 있다니. 이게 너무 좋으니까. 지금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너무 어려울 것 같이 느껴지지만, 우리 각자 엄청 다르고, 여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이 열리는 것도 보고, 나도 열리고 하니까 다 가능하겠다... 환경이 이렇게 구성돼 있으니까 진짜 가능하구나.

처음에 우동사 들어오기로 결정 난 후에, 이사 들어오기 2주 전부터는 아 내가 뭔가 잘 못된 결정을 내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인 : 어떤 생각이었어?

경리 : 맨 처음엔 6명이었으니까. 그 6명 대부분 생판 처음 보는 데 들어와 가지고 어떻게 하지? 어떻게 살지? 이런 거. 내 행동이 너무나 제한될 것 같고. 부자유스러워질 것 같고. 불편할 것 같고. 밥 먹는 것도 좀 눈치 보일 것 같고. 밥 먹는 거부터 그런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 나는 그동안 쭉 혼자 자취하면서 살았고, 원래도 말이 없는 편이었어. 학창 시절부터 주로 내가 친구들 말을 들어준다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말도 잘 못하고, 말하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 말하는 거 자체가 좀 귀찮은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는데. 반야 들어와서 한 네다섯 달 지나고 나서부터는 사람들이 궁금해지니까 그냥 내가 더 말 걸게 됐어. 친구들이 나한테 말 걸 땐, 처음에 약간 심호흡하면서 '뭐라고 대답해야 될까.' 이런 게 아직 있긴 하지만, 한 번 입 터지기 시작하면 줄줄줄줄 끝없이 나와. 이제는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거잖아? 궁금하면 말 걸고. 누가 말 걸어주면 계속 말하고 싶어 지고. 그런 게 많이 바뀌었구나 싶어. 말을 귀찮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그냥 익숙하지 않은 거였구나. 내가 내 자신을 그렇게(말하기 귀찮은 사람으로) 보고 있기도 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는 환경이 나한테 엄청 중요했던 것 같아. 나를 여는 데 있어서.

정인 : 그러게. 근데 진짜 경리 말대로, 사람들이랑 많이 싸우는 나도 편안해지는데 누가 안 되겠어? 이런 생각 나도 되게 컸다. 막 사람들 공격하고 싶어 지고, 공격당한 것 같고 이런 게 엄청 클 때가 나도 있었으니까. 나도 그랬었는데 뭐 쟤도 되겠지, 누구라도 되겠지(편안해지겠지) 이런 생각은 꽤 드는 거 같아. 정말 누구라도 되겠지.

다정 : 오늘 얘기하다 보니까, 다른 반야 친구들에 대한 애정으로도 번지는 것 같네. 되게 좋다. 그리고 알기 코스 이 넷이 갔다 오고 나 되게 좋았어. 정말 좋았어. 근데 이 좋음이 같이 코스 안 다녀온 다른 반야 친구들한테의 애정으로도 번지는 것 같아. 궁금해지고. 지금 2차 알기 코스 가 있는 친구들은 갔다 와서 어떤 얘기할까? 어땠을까? 

.......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사진 찍으면서 많이 웃었어. 우리의 큰 웃음소리를 전할 수 없는 게 정말... 아쉽다. 서로 솔직하게 꺼내 줄수록 이야기 나누는 게 더 재밌어졌어. 솔직한 마음일수록 감추고 숨겨야 될 것이 아니라, 가볍게 꺼내어 같이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과정이 기쁘고 소중해. 더 편하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속에서 만나는 자신이 새롭기도 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친구들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고. 앞으로 서로 더 편해지는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또 어떤 것들일까? 저 사람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바라보고, 다음 우리의 이야기 나눔을 상상해 보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