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자립과 공동체적인 삶 <우리동네 사람들>

2020. 12. 2. 16:50동네살이&일상/기고글

사진은 2020년 11월 28일에 열린 우리동네 <들장> 판매자들과 함께

 

2014년 6월 26일

<출처> 인천마을공동체지원센터 웹진 www.incheonmaeul.org/?p=633 

최근 공유주택(소셜 하우징, 셰어 하우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공유주택이란 한 집에서 <사적인 공간>과 별도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여러 사람이 공동 공간을 중심으로 삶을 공유하는 형태의 주거 방식을 말하는데요. 이러한 방식은 거주하는 사람들이 함께 주체적으로 삶의 형태를 결정하고, 가사를 분담해서 해결하는 등 협력에 의해 살아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출자해서 마련한 집은 혼자일 때보다 더 쾌적한 주거환경이면서도 좋은 이웃과 생활비 절약의 효과까지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서구 검암동에도 이러한 공동주거 모임이 있습니다. 30대 청년들이 만든 주거공동체 ‘우동사’(우리동네 사람들)인데요. 청년들이 모여 살면서 ‘주거’와 ‘경제’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본 지에는 우동사 식구인 정재원, 이성희님과 나누었던 인터뷰 내용을 싣습니다.

 

함께 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1년 봄. 불교단체인 ‘정토회’에서 활동하던 여섯 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당시에는 각자 직장생활을 하며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삶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생태적 ․ 평화적인 삶의 가치를 가지고 '경작하면서 생산적인 삶'을 살아보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난 것이다.

  고민대로 살기 위해서 귀촌 모임을 준비했다. 한 달에 한번 모이다가 부족함을 느껴서 자취하던 친구 집에서 매일 합숙을 했다. 그때 당장은 힘들지만 차근차근 준비해 가자고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은 함께 사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함께 사는 건 어떤 안전망 같은 것인데, 각자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면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귀촌을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저렴하면서도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가 교통이나 구조, 예산에 적합한 곳으로 인천의 검암동을 꼽게 되었다. 그렇게 주거형태로서의 우동사가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생활 방식들이 한 데 섞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향점은 비슷했지만 삶의 방식이 달랐다. 처음엔 청소, 빨래, 정리 등등 모든 것에 대한 기준이 달라서 의견이 엇갈리곤 했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서로에 대한 호의로 살다 보니 소통하며 푸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1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적응이 되면서 자연스레 방법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웃음)

  지금은 17명의 식구가 옆집, 아랫집으로 3채에서 생활한다. 처음 6명이 살 때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의했고, 12명, 17명으로 늘어났을 때는 생활 문제, 재정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2년 반이 지나니까 집집마다 분위기(스타일)가 각기 생겼다. 어쨌든 가족 같은 관계이면서도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함께 살다 보면 생기는 문제들, 그리고 앞으로 삶의 방향이나 귀촌에 대한 계획을 정기적으로 논의할 자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매주 한 번씩 ‘밥상모임’을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이 되면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해서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요즘 각자 어떻게 사는지', '우리 생활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식구(食口)라는 유대감이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갖게 한다. 그래서 지금은 밥 먹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우리 모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밥상모임이다.

  그밖에 ‘나’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필요를 느껴서 외부 기관을 통해서 집단 심리상담, 애니어그램 등을 진행하며 소통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고, 3-4회 코스로 3회 정도 공동주거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함께 사는 것의 장점이 뭔가요?

  무엇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활비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경제적 형편이 다른데 생활비를 똑같이 부담하는 것이 공정치 않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각자의 수입과 형편에 따라 10-20만원 사이에서 스스로 생활비를 결정해서 낸다. 더 버는 사람들이 더 낸다.(웃음)

  규모는 작지만 재단도 있다. 내부의 복지를 위해 공동의 기금을 모아 ‘우동사 재단’을 만들었다. 기금은 매달 운영되는 생활비 중 남아서 이월되는 금액과 누군가가 쾌척한 돈으로 조성된다. 우리 중 누군가 돈이 급하게 필요하면 무이자로 소액대출을 해주기도 하고, 문화 ․ 교육 ․ 여가에 필요한 일부를 지원한다.

  재정의 측면에서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은 ‘연대은행’이다. 전체의 이익이나 필요에 의해 목돈이 필요할 때가 있다.(집 구입 등) 이 때 운용할 수 있는 여유자금을 위해 만들었다. 각자 운영하는 흩어진 돈을 연대은행이라는 매개를 통해 한군데로 모아 관리하는데, 개인의 소유는 인정하는 형태이다.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소유에서 공유로 가는 생각의 전환이 쉽지는 않았다. 이미 몸에 밴 사고방식을 스스로 뛰어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의논하고,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식구 중 누군가는 “나는 가난하지만, 우리는 부자다.” 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처럼 한 사람의 소유일 때는 크지 않던 돈이 모였을 땐 큰돈이 되고, 결국 혼자일 땐 할 수 없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귀촌활동이 가능했던 건 학습을 통한 준비모임 덕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2011년 말에 귀촌과 공동체에 관련된 열 가지 키워드(협동조합, 대안경제, 교육, 식량 자립, 에너지 자립, 의료조합 및 대안의료 등)를 함께 공부해보자며 ‘우리마을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우동사 식구들 뿐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오픈해서 매회 10-20명 정도가 함께 공부했다. 미리 관련 자료를 공유해서 읽은 후 검암에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형태로 10주간 진행했다. 귀촌을 하려면 준비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왜 귀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놓고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독서모임이 끝난 후 상시적으로 재능나눔을 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때 협동조합 형식의 카페를 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정토회관(서울 서초구) 근처에서 공간을 물색했고, 보증금 5000만원을 만들기 위해서 50명의 주인이 100만원씩 출자하자는 기획 하에 '카페50'을 만들었다. 지금은 42명이 출자한 상황이다. 카페 운영이 수익보단 사람이 목적이라 다양하고 재미난 시도가 생겨나는 중이다. 현재는 서울에 있는 '청년 일자리허브'의 창문카페도 운영 중이다. 6-8명이 시간을 나누어 근무하는 형태로 내부의 일자리 나눔을 시도하고 있다.

언제부터 농사를 지으신 건가요? 그리고 왜 강화도로 가신 건가요?

  함께 사는 일이 어느 정도 몸에 익은 뒤에는 좀 더 귀촌에 집중하게 되었다. 대상지를 답사하던 도중 강화에서 열린 일본의 ‘에즈원 커뮤니티’* 세미나에 참여했는데, 거기서 사회적기업 <콩세알>을 운영하시는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께서는 “농촌 인구가 고령화 되어서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방치되고 있다”며 콩세알 인근의 700평의 논농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주셨다.

  그렇게 연이 닿아 작년 3월부터 농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1년이 좀 넘었는데, 농사과정에서 필요한 건 다 해본 것 같다. 작년 11월, 우렁이 농법으로 처음 수확한 쌀을 10kg씩 60포대에 담아 함께한 사람들이 나눴다. 비록 적은 양이었지만 수확의 순간이 주는 벅차오르는 감격이 있었다.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자족하며 생태적인 삶을 사는 것이 귀촌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시골로 장소를 옮겨서 사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정이랄까? 서로서로 챙겨주는 공동체적인 삶을 어떻게 구현해 낼 수 있을지, 어떻게 자급도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부터 삶의 방식을 바꿔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일환으로 베란다에 닭장을 짓고 닭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덕에 우리가 만들어내는 음식물 쓰레기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9월부터는 계란을 자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계로 수익을 내고 있는 일본의 야마기 공동체를 모델 삼아 우리도 도시에서의 양계모델을 만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목공소 일도 자립도를 높여가려 시도 중 하나다. 가능하면 적게 사용하고, 필요한 것이 생기면 만들어서 쓰려고 한다. 이왕이면 검암에서 사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장으로 확대하고 싶다. 모든 필요를 돈으로만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원의 선순환 또는 에너지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우동사의 공동주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서울에서 하는 공동주거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입주시키는 하드웨어에 치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해 나갈지에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식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주거문제 해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 또는 ‘공동체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다 보니 인프라 없이는 안되겠더라. 그래서 검암에서 관계망을 넓혀보려 한다. 나아가 생활과 일이 분리되지 않는, 공동체의 에너지가 모이도록 하는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우동사>도 장기적인 시도를 위해서 만든 법인이고, 집도 그 일환으로 법인이 구입한 것이다. 그렇게 함께 사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카페50’으로, 자급자족에 대한 관심이 ‘논데이’, ‘밭데이’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각자가 우동사를 어떻게 그려 나가고 있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나온 캐치프레이즈가 ‘서로에게 안정된, 실험적인 공동체 룰루랄라 우동사’ 였거든요. 앞으로 우동사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형태가 없어요. 그때그때마다 실험하고, 서로에게 안심이 되는 공동체이자 관계망을 지향하자는 것만 정해져 있는 거죠. 재미삼아 ‘100명의 청년이 사는 마을을 만들자’, ‘땅을 사서 우동사 촌을 만들자’라는 이야기를 해 보기도 했었지만(웃음), 모든 것들은 과정 속에서 생겨날 것 같아요.”

 

www.incheonmaeul.org/?p=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