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공동주거러 숙곰 이야기] #2. 멈추고 싶지만 멈추기 어려웠던 그때

2020. 6. 7. 12:18동네살이&일상/우리동네사람들 인터뷰

진선. 이렇게 인터뷰자리로 만나니 조금 어색한 느낌도 있네. 숙곰은 인터뷰하러 오면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숙곰. 어떤 질문이 나올까 궁금함이 있었다. 질문에 답하면서, 나도 뭔가 정리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던 것 같고. '내 글도 석수인터뷰처럼 블로그랑 페북에 올라가면 사람들이 읽겠네' 생각되니 대답을 잘 해야할 것 같은 기분도 들더라. 그리곤 다시, ‘나는 나대로 대답하고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자기 방식으로 읽고 느끼는거겠지’ 하는 생각하며 왔다.

 진선. 두어달쯤 전 다정이와 인터뷰 프로젝트 구상하면서 '누구를 해보고 싶은가' 생각했는데 나는 숙곰이가 떠올랐다. 우동사에서 오래 지내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가는 느낌이다. 슬기로운 공동생활이랄까.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도 직접 듣기도 했고. 원하는 것을 실현해가는 장으로 공동주거를 활용하는 느낌인데 그래서 숙곰이의 일상 이야기가 소개되면 좋겠다싶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숙곰. 그렇게 보였나? 나도 '나갈까 말까' 맨날 고민하는데 (웃음)

진선. 앗 그런가 ㅋㅋ 그런 이야기도 차차 들어보고 싶다. 

오른쪽이 숙곰, 왼쪽은 옵저버로 함께 한 다정. 다정이가 제일 신나보인다는^^

 

진선. 먼저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단하게 자기소개해달라.  

숙곰. 이런 거하는 게 엄청 오랜만이네. 우동사에 2014년에 들어와서 6년정도 됐다. 이름은 노숙경, 숙곰이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리고. 나이는 서른 여섯. 일주일에 두 번 약사로 일하고 있고, 나머지시간은 주로 동네에서 보낸다. 일상은 꽤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바쁘고 쫓기는 걸 별로 안좋아한다. 20대 때 불같이 활동했던 여운이 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일부러 더 여유롭게 지내려고 한다. 바빠지는 걸 경계하는 느낌이랄까.

집에서는 베란다 텃밭을 하고 있는데 요즘 한창 수확철이라 물 주고 수확하고 그걸로 요리 해먹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텃밭일이랑 집 청소 정리정돈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간다. 이런저런 동네모임들도 하고, 최근에 우동사 쉐어하우스 운영팀이 꾸려져서 운영팀 일도 하고, 이런저런 우동사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진선.약국 일은 이틀만 하나?

숙곰. 약국에서 요청이 있으면 더 나갈때도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두 번만 한다. 예전에 더 길게 할 때도 있었는데, 주 5일 이상 약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화가 나더라. 졸업하면서 약국일은 쪽 했는데 하다보니, 돈이 필요하긴한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하면 적절하겠다 싶어서, 요즘 주 2회 일하고 있다. 그렇게 일하고 돈도 적당히 벌 수 있다는 직업을 가진 게 굉장히 좋은 조건인 것 같다.

진선. 일하면서는 어떤가?

숙곰. 약국에서도 크게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동네에서 벗어나서 일반사회(?)에서 사람들과 보내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다. 이런저런 자신에 대해 살펴볼 꺼리들도 생기고.

 일주일에 두번 약국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숙곰을 보며 자주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약사는 정말 좋구나. 꿀알바가 가능한 직종! 약사라는 조건이 좋기도 하지만, 원하는 일상을 보내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노동시간 노동환경을 찾아가는 숙곰이의 오랜 과정이 있었겠구나 싶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 반농반X' 적이라고 생각했다. 반농반약사?  인천 검암이라는 도시에서 살면서 텃밭농사도 꽤 비중있게 공들여 하고 있고, 귀촌에 대한 꿈고 꾸고 있고, 뭔가 원하는 삶을 꽤 야무지게 이루면서 또 준비해가는 똑똑이 같다.  

숙곰이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책이다. <반농반X로 살아가는 법>

 

진선.  우동사에 온지 6년이면 꽤 오래됐다. 오래 지낸 순으로 상위 몇 프로일 듯.

숙곰.  그렇다, 나 오래 버틴 자!

진선. 오래된 이야기겠지만 처음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숙곰.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나서 주로 공동주거 형태로 살았다. 2009년에 졸업해서 6개월만에 독립했다. 그때 한창 정토회 활동할 때였다. 서초에서 활동가들끼리 같이 집을 얻어서 살았다. 셋이서 집을 얻었다. 거기 흥미도 있었다(흥미는 애즈원 스즈카 커뮤니티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이다). 일종의 여자활동가들의 집. 적으면 네 다섯에서 많으면 일곱여덟까지 함께 살았다. 거기서  삼년 반 정도 지냈다. 그때 정수진, 김정인도 거쳐갔다. 백흥미랑은 삼년 반 내내 같이 살았다. 그 집 해체되면서 일년정도 혼자 원룸에서 자취를 했다. 그것도 꽤 재미있었다. 내 마음대로 사니까. 그때 비누곽과 그릇까지 깔맞춤해서 지냈다. ㅋㅋㅋ

그 다음 스텝으로 우동사에 오게 됐다. 2014년 봄이다. 그 전부터 우동사로 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정토회 활동을 하고 있을 때라서, 검암에서 서초까지 다니는게 좀 멀었다. 당시 정토회 활동이 나에게 일순위였기 때문에 근거지에서 너무 먼 느낌. 서초동에 살때 자다가 일어나서 10분이면 법당 올 수 있었다.

우동사로 오기 전에 활동을 어떻게할지 고민할 때였다. 그때 잠깐 멈춰보면 좋겠다싶어서 일년 휴가받아서 쉬었다. 그게 2014년인데 그러면서 우동사에 온 것 같다. 시기적으로 맞았다고 할까.

진선 . 활동을 쉰다고 우동사로 올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

숙곰 . 그해 여기저기 다닐 일이 많았는데 원룸 그대로 두고 여기저기 다니는게 아깝기도 하고 또 나는 부동산 계약하는 게 어렵더라. 돈도 많이 들고. 돈도 좀 아끼고, 집을 비워놔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오게 된 것 같다. 때마침 자리가 있어서 402호 지금 방으로 들어왔다. 처음부터 지금 사는 방에서 쭉 살고 있다. 그때 멤버가 좀 친한 사람들이었다. 성희 재원이 있었고, 윤호는 뱃속에 있었다. 동진오빠도 이 집에 살았는데, 셋다 활동할 때 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내가 우동사에 온 게 2015년 겨울이다. 그때 나에게 숙곰은 이미 원년멤버, 처음부터 있었던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가:출 ('가벼운 출발')이라는 공동주거 체험프로그램을 통해서 들어온 나로서는, 초기 멤버들의 '친해서 같이 살기시작했다'는 이야기가 꽤 새롭게 들렸다. 아 이런게 자연스러운 느낌인데? 하는. 흥미, 정인이, 수진이 등등 정토회 활동하던 동네친구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꽤 새록새록하다. 내가 오기 전의 우동사 이야기, 좀더 시작점에 다가가는 느낌이다.

 

진선.  와서 살아보니 어땠나?

숙곰. 서초동 여자 숙소에 살 때 어중이떠중이 정신없이 살았던거같다. 짐도 많고 정리도 안되고, 집 살림에 관심 있는 사람도 없었는데, 우동사 오니까 되게 쾌적한 느낌이었다. 집도 넓고 짐도 정돈되어 있고 인구밀도도 좀 적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런 느낌이었다.

진선. 일반적으로는 방을 둘이 쓴다거나 집에 대여섯명 있는게 꽤 복작복작하게 느껴질텐데, 정토회 활동하며 같이살던 친구들이 우동사오면 여기가 꽤 쾌적하게 느껴지겠다. (웃음) 

숙곰. 처음 들어왔을 때 (정토회) 평화재단 활동을 일년 휴직했는데 그래도 이런저런 일을 받아서 하고 있었다. 주말마다 행사 가고 집에도 거의 새벽에 들어왔다. 휴직이긴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초반 2-3년 기간은, 식구들이 주말에 모여서 워크숍을 한다해도 그런 걸 참여를 못했다. 집 모임이나 행사하면 나도 끼고 싶은데 내 일정은 안맞고, 그렇다고 내 일정에 맞춰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맨날 무슨 이야기하려나 궁금해만 하는 느낌으로 2-3년은 지냈다. 그런데서 서운함이 일 때도 좀 있었다. 
그 이후로 조금씩 받아하던 활동마저 쉬면서(그 즈음 숙곰은 평화재단 활동을 그만두었다_편집자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동사라는 공간이 나한테는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다. 활동을 그만둘 수 있던 것도 우동사가 있어서 가능했던 듯. 


진선 : 우동사가 있어서 쉬는 게 가능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숙곰. 뭐라고 하고 싶은 에너지가 내 안에 있는데, 십년동안 하던 활동을 그만두는 게 상상이 안됐다. 그만두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 그런 게 상상이 안됐다고 할까. 강화에서 열린 애즈원 사이엔즈 코스를 들으면서 ‘그만두고 싶어하면서 어떤 거에 걸려서 고민이 되는걸까’ , ‘나는 정말은 어떤 게 하고 싶은걸까’ 에 대해 깊게 살펴졌다. 
'같이 뭔가를 해갈 사람들이 있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이런 가능성이 보여서 그때 일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을 옆에서 보는 것도 여러가지 영감이 되었던 것 같고. 덕분에. 다시금 어떤 걸 하고 싶어서 활동을 시작했는지, 내 안에 어떤 게 있었던 건지 돌아보게 되서 그렇게 몇 년은 가만히 보내게 됐다. 요즘은, 이제 좀 나도 다시 뭘 해볼까 하는 에너지가 좀 올라오는 것 같다. 우동사라는 장이 있어서 그게 가능했던 것 같다. 

 

 얼마전에 숙곰이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동사 활동, 의미있는 일 같은 걸 같이 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무리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마음, 먼저 단도리 하는 마음이 같이 있다고 했다. 오랜시간동안 꽤 열심히 활동하면서 번아웃된 경험이 있어서 그런거 같다고 했다.

 몇 년을 쉬엄쉬엄 자기를 살피며 에너지가 조금씩 올라온 것 같다는 말이 꽤 반갑게 들린다. 번아웃되지 않게, 같이 살펴가면서 그렇지만 집중해서 함께 뭔가를 해보면 좋겠다. 

한때 꽤 열독했던 마스다 미리의 글과 그림이 떠올려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아니 매번 자신에게 물어야할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 #3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