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기행 3

2019. 11. 12. 11:37유라시아학당/2017 운남기행

운남기행 3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아파트를 개조해 만든 게스트하우스다. 단지엔 18층 아파트가 수십개 모여 있다. 그 중엔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복층 아파트도 여럿이다. 그래서 엘리베이트를 타면 1,3,5,7층 순으로 표시가 된다. 중국사람들이 넓은 집을 선호한단다.

청공구는 넓은 대지에 바둑판처럼 도로를 내 택지를 구획해 놓고 택지마다 성격을 부여했다. 아파트단지, 상업단지, 정부단지, 학교, 공원 등.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곳은 벌판이거나 농사 짓고 사는 원주민들의 삶터로 남아 있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8차선 도로를 건너면 닭이 노닐고 있다. 이질적인 도시와 농촌이 묘하게 어울려있다.

돌이켜보면 검암에 처음 이사왔을 때만 해도 칠면조가 살고 있었다. 칠면조가 종종 담을 넘어 도로로 진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원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그 자리엔 빌라가 들어서 있지만 나에겐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곳도 몇 년 후면 닭은 자취를 감추고 벌판은 빌딩 숲으로 가득차겠지.

오늘은 쿤밍시 정부청사 일대를 답사하였다. 숙소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거리지만 도보로는 3시간이 족히 걸렸다. 나는 도보를 선호하는 편이다. 걷는 속도와 생각하는 속도가 잘 맞다. 차를 타면 볼 틈이 없고, 자전거를 타면 생각할 틈이 없다. 걸으면 의도치 않은 샛길을 경험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추억도 배가 된다.

<공유자전거>

걷다보니 거리 곳곳에서 시정부에서 설치한 공유자전거가 보인다. 더 눈에 띄는 건 인도 한켠에 하얀 페인트로 그려진, 차량 한 대 정도 들어갈 크기의 네모난 선이다. 비동력 이동수단을 세워두는 곳이란 표시와 ofo(오포) 혹은 mobike(모바이크)라고 적혀 있다.

오포와 모바이크는 중국에서 최근 1,2년 사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50여 개 공유자전거 업체의 쌍두마차다. 생긴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중국 전역을 넘어 미국, 일본, 태국 등에도 진출해 있다하니 성장세가 무섭다. 시간당 1~2위엔(180~360원)의 이용료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려면 한참 더 걸리겠지만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회원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사를 찾아보니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자전거가 분실되거나 고장나 방치되는 경우도 많고, 경쟁도 심해 수익성이 안보이는 거품이 잔뜩 낀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전망이 어둡지만도 않다. 무엇보다 가입할 때 내는 자전거 보증금으로 오포는 199위엔(약 3만 8천원)을 받는데 한 번 가입하면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운영자금으로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카카오톡처럼 이용자가 많아지면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으니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살아남는 업체는 손에 꼽힐테다.

 


오포는 하버드대에서 시작한 페이스북을 닮았다. 캠퍼스가 넓은 베이징대 학생들이 공유자전거의 수요가 많다고 여겨 중고자전거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과감하게 투자를 받아 1년 만에 15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였고, 향후 전국 3천만 명의 대학생이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니 사업 성공에 대한 댓가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불가다.

1992년, 막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지고 중국으로 사업진출 붐이 불던 때가 있었다. 중국에서 한 사람에게 양말 하나씩만 팔아도 13억 개를 팔 수 있다는 이야기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순진한 아이들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었던 그 꿈같던 이야기가 기술의 발달로 점점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공유자전거의 성장은 정부의 정책방향과 맞닿아 있기에 가능했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우리에게도 골치거리지만 정작 오염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베이징에서는 공기오염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가 빈번하고 시장이 사과할 정도이니 심각성은 우리보다 훨씬 크다.

정부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를 일찌감치 마련하는 한 편 전기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을 장려하고 있는데, 도로에 띠엔똥처라고 불리는 전기오토바이가 대세를 차지한 것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버스도 이동거리가 짧은 지선 버스부터 전기버스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걷다보니 고펀(go fun)이란 전기차 공유서비스도 보인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검색해보니 작년에 베이징에서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17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중에 마침 쿤밍도 있었다. 1km에 1위엔(약 180원)+1분당 0.1위엔(약 18원)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용이 가능해 택시는 물론이고 가볍게 이용하기에는 렌트카보다 저렴하다고 한다.

고펀은 앞으로 공유자동차로 주요 사이트까지 간 뒤 공유자전거로 목적지로 가는 패턴이 일상화될 거라고 전망한다. 유라시아 견문 모임에서 읽었던 싱가포르의 백년대계 중 자동차 없는 도시가 떠올랐다. 환경문제로 골치를 앓는 중국도 공유자동차와 공유자전거의 결합으로 이런 움직임이 점차 가속화되지 않을까 싶다.

 



<웨이신페이>

인상적인 변화가 또 있다. 내가 묵는 게스트하우스에 숙박비를 내려고 하니 주인장이 벽을 가리킨다. 벽에는 QR코드가 세 개 붙어 있다. 세가지 지불 수단 중에 선택하라는 의미다. 한국 사람이라 처음 써본다고 하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카톡에 해당하는 웨이신(위챗)을 열어 바코드를 스캔하고 지불가격과 비번을 입력하면 끝이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를 쓰면서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은 일찌감치 온라인 지불수단을 도입해 그 역사만큼이나 사용처가 많다.

범이 이야기로는 노점상에서도 웨이신으로 결제한다고 할 정도니 어느정도 대중화 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숙소 주인장이 귀찮다는 듯 말없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것만 봐도 현금이 필요없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작년에 공상은행에 계좌를 만들어둔터라 나도 ATM기에 중국돈을 넣었다. 은행계좌와 웨이신이 연동되어 언제든지 서로 입출금이 가능하다. 현금은 도난의 위험 탓에 신경이 쓰였는데 계좌에 넣어두니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편해진 마음 속에 불편함이 숨어있다. 얼마나 도난에 신경쓰며 다니고 있었던가. 10여 년 전, 상해와 북경에서 주머니에 넣어 둔 디카를 꺼내려다 허공을 만졌을 때의 황당함과 먹먹함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나보다. 그새 중국은 많이 변했고, 디카가 귀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머지 않아 돈도 귀하지 않은 세상이 오려나. 웨이신페이마저도 불편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한 편 나는 여전히 과일가게에서 원하는 걸 집어들고 동전지갑을 꺼내 잔돈을 고른 다음 주인장 손에 동전을 올려두는 것이 좋다. 세어보고 만족스러워하는 주인장의 눈을 마주하고 나 역시 만족스럽게 '셰셰'하고 돌아서는 그 느낌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전의 원래 쓰임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동전지갑은 비우되 봉지에는 맛있는 과일을 가득 채워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기쁘다.

 

2017.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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