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카 기행 2

2019. 11. 12. 12:14유라시아학당/2019 스즈카기행

스즈카 기행 2

아카데미생들은 주 6일, 오전시간에 일을 한다. 대체로 스즈카 커뮤니티의 경제를 담당하는 두 축인 도시락 가게와 팜(Farm)으로 가는데, 나는 팜에서 일하게 되었다.

팜은 대부분 무상으로 빌린 30여 군데의 밭에서 수십 종류의 야채를 기르고 수확하여 근처 직판장에 납품한다. 일본의 농촌은 우리처럼 노령화 되어 있고, 힘이 많이 드는 밭은 노는 땅이 많다. 십여 년 사이에 지산지소(그 지역에서 생산하여 그 지역에서 소비한다) 흐름이 대중화 되어 곳곳에 직판장이 생겼다고 한다.

 



스즈카는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어 일년 내내 노지 농사가 가능하다. 그래서 매일 수확과 출하가 이루어지며, 이것이 팜의 주요 업무가 된다. 요즘은 주로 브로컬리와 양배추, 당근 등을 수확하고 출하한다.

오늘은 새로 뿌린 시금치와 당근씨의 보온을 위해 비닐을 덮는 작업을 했다. 커뮤니티의 멤버인 이나가키상과 토시유키군, 류상, 그리고 아카데미생인 지에고와 함께 했다.

비닐을 씌우는데도 각자 스타일이 있다. 어떤걸 먼저 할지, 어떻게 할지 자기 경험대로 드러난다. 지에고도 브라질에서 3년간 농사를 지었고, 나 역시 몇 년 동안 농사일을 하며 한 비닐 씌어 본 경험이 있다. 커뮤니티 멤버인 이나가키상과 토시유키, 류상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흙을 어디에서부터 고정할지, 어느 정도로 덮을지 작업반장격인 토시유키가 작업지시를 하거나 자기 경험을 밀어붙일 만도 있을텐데 당최 그런 기색이 없다. 각자 스타일대로 하다 의견이 있으면 의견을 내고, 다른 사람 의견을 듣고 적절한 것을 취해 갈 뿐이다. 내가 많이 해봤으니까 하는 고집스러운 기색이 없다.

일이 꼬이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흐름에 맞추어가기도 하고, 각자의 속도대로 하기도 하면서 하나하나 일이 되어 간다. 하다 문제가 생기면 의견을 내고 보완한다. 그렇게 일하고 나니 은근히 사람들에게 정이 간다. 오히려 내 습관을 고집부리고 싶던 내 마음이 내심 부끄러워진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 일을 하는데 무엇이 중요했던가를 돌아본다. 내 기준일 뿐인 '효율적'으로 하고 싶다거나 익숙한 내 습관대로 하고 싶었구나 싶다. 내 머릿속에 집중하느라 사람들이 보이지 않다가 동료들에 의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보이니 그 흐름에 맞추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들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감정이 떠오른다.


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에는 커뮤니티 사람들이 수요일마다 참여하는 공부모임에 갔다. 커뮤니티 연구소 멤버인 스기에상이 진행하는 모임으로, 20여 명이 참가했다. 교재는 연구소에서 펴낸 '다음 사회로, 인지(人知)혁명'. 오늘은 '안심 안정의 확립 경제'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존 사회에서는 각자가 벌어서 살아간다는 경제관념이 뿌리깊지만, 이 사회의 경제는 각자의 가진 맛을 발휘할 수 있는, 자기에게 맞는 장(場)을 찾아내는 것을 우선하는 구조입니다. 

각자의 가진 맛을 발휘하여 도움이 되고 싶다는 욕구의 뿌리에는, 사회 그 자체, 즉,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모두가 서로서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회입니다. 

이 구조가 궤도에 오르면, 개별경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각자의 살림은 안정됩니다. 저축이나 보증을 신경쓸 필요도 없이, 잘 하는 부문에 전념할 수 있는 안심감은 각별합니다.

한사람이 잘 하는 부문에 전념하면, 수백명•수천명, 그 이상의 사람이 그 은혜를 입는 것이 가능하겠지요. 농업이나 식품생산을 잘하는 사람이 몇 명 있으면 그 지역의 사람 만으로는 다 먹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산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이 흥미롭다. 근래의 내 관심사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이미 전세계 사람들이 기계를 이용해 많은 양을 생산하여 유통하고, 세계인들이 소비하는 생산-물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데 왜 개개인의 삶은 점점 각박해져가고 있는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을 위한 활동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알테다. 생존을 위해 나 홀로 모든걸 책임져야 한다는 각오가 얼마나 외로운지를, 타인보다 못나면 도태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얼마나 불쾌한지를.

돈이 주인이 되어 있는 사회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를 끌어가는 원리가 어째서 인본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인가. 돈에 의해 움직이겠다는걸 모두가 합의하고 순응하겠다는 말인가. 보면 볼수록 정말 의아하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위 잘사는 나라일수록 돈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고, 아이도 나을 수 없고, 사랑도 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 간다. 한국도, 일본도, 브라질도 그렇다. 사람이 메말라가는 사회. 자본의 성질로 본다면 인간은 점점 쓸모없어져만 간다. 스스로 도태되어 간다.

한알의 씨앗이 천개로 늘어나듯, 한사람이 하나의 일에 집중하면 천 명이 쓸 것도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다. 만들어낸 것을 누군가 잘 써주길 바라는 마음을 살려 서로 선물할 수 있다면, 댓가를 바라지 않고 주고 싶은 마음 그 자체로 행복이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그런 건 이제 가족끼리도 잘 안되는데.. 꿈같은 이야기일테다. 저항감도 상당할테다. 그렇지만 그 길이 이질적인 한 걸음이 아니라 인간이 원래 지니고 있는 성품을 회복하는 자연스러운 길이란 걸 알 수만 있다면, 마치 아픈 사람이 건강을 회복하려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듯, 누구나 바라는 쉬운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공부모임에서 보낸 시간이 꽤 인상적이어서 집으로 돌아와 정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야기를 나누며 정아와 남편, 아내라는 역할로써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나아가고 싶다 했다. '남편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아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머릿속 역할극이 아닌, 각자의 바램을 알아차리며 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했다. 여민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 있다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 했다.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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