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카 기행 1

2019. 11. 12. 12:10유라시아학당/2019 스즈카기행

스즈카 기행 1

일본 스즈카(鈴鹿)에 왔다. 애즈원(as one) 네트워크의 스즈카 커뮤니티다. 정아와 함께 준(準) 아카데미생 자격으로 3개월간 집중해서 공부할 작정이다. 몇 년간 우동사와 인연을 맺어온 곳으로, 다음 장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년 만에 왔음에도 아카데미생을 맞이하는 테르코상, 사카이상, 미에상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년이란 시간은 사람도, 역할도 바꿀만 한데 이곳에선 시간이 멈춘 듯 아는 얼굴들이 그대로다. 묵직하다.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안심이 된다.

2년 사이 유학생 제도는 좀 더 다듬어져 아카데미로 바뀌었고, 이들을 위한 건물도 지어졌다. 애즈원 하우스라 불리는 이 곳에서 세 달 동안 지낼 둥지를 틀었다.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는 요청에 정아, 여민과 다른 방을 배정해 주었다. 그럼에도 정아방에는 내가 잘 수 있는 이불을 한 세트 더 마련해 주었다. 세심하고 따뜻하다. 나는 브라질에서 온 일본인 레오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아카데미생은 브라질에서 온 지에고와 레오, 일본인 요시와 사토미, 타키, 나츠미, 그리고 한국인 흥미다. 흥미는 오랜 인연이 있는 친구다. 10년 동안 다니던 대안학교 교사직을 내려두고 이곳에 온지 2년이 넘었다. 공부는 더욱 깊어지고 마음은 편안해진 듯 하다. 여기에 우동사 멤버이자 아카데미를 지나 스즈카와 한국의 교류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진순이 있다. 덕분에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이 둘은 3개월간 의지할 친구이자 앞으로 함께 해나갈 동지들이다.

나는 이번 기간 동안 내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작정이다. 경계심이라고 표현했지만 좀 더 살펴보면 혼나기 싫은 마음, 비난받기 싫어하는 마음이다. 긴장감이자 두려움이기도 하다. 아마 학창시절부터 군생활을 지나 회사까지, 화와 비난이 일상인 환경에서 평생을 지냈으니 어쩌면 당연하게 형성된 반응일지도 모른다.

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 서로가 서로를 탓하고 벌하는 사회이니 긴장감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불안한 일이라고도 생각해 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런 긴장감이 사람들과 더욱 깊어지는데 큰 장애가 된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사람들을 잠재적으로 나를 탓할 이들로 보고 있으니! 불안이자 불만족이다. 마음으로는 더욱 친해지고 싶은데 그 두려움 탓에 관계에 장벽을 두르고 비무장지대를 만드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 몇 년, 관계에서 부딪힘이 줄어드니 나는 줄곧 비무장지대가 평화의 상징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평화가 아닌 단절을 뜻하고 깊은 외로움의 원인이었다.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서일까, 내 안에도 견고한 38선이 있다.

이곳에서 해가려는 공부는 누군가가 정해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보고, 내 바람을 알아갈 뿐이다.

'나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실제는 어떤가'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나는 어떻게 해가고 싶은가'

나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검토하는 일이기도 하다. 몇 년간의 공부를 통해 여러 변화들이 일어났다. 보는 법이 바뀌자 느낌도 바뀌었다. 내 시선이 머리속 관념이 아닌 실제를 향하게 되니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더 잘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여민이도 태어났다.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살펴볼 것들은 끊임없이 드러난다. 아마 청소하듯 평생 해갈 공부일테다.

마침 이튿날, '주체적으로 산다'란 주제로 아카데미생들의 공부모임이 열렸다. 아직 일본어가 들리지 않아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질문은 남아 곱씹어보게 된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건 뭘까.

살펴보니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남에게 인정 받으려고, 혼나지 않으려고, 내 안의 옳은 것을 지키려고 반응하고 움직이는 내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으로는 도무지 쾌적하지가 않다.

그럼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나.

남은 시간 동안 하나하나,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가려 한다.

 

20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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