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없는 일주일05_폭풍같은 이틀을 보냈다.

2020. 1. 4. 06:07육아, 인간의 성장

*** 우율이 아빠 깡순은 12/28(토) 아침에 <나를 알기 위한 코스>를 들으러 일본으로 먼저 떠났어요. 우율이와 엄마인 여신은 다음 주 토요일(1/4)에 일본으로 가서 3박4일간 애즈원 스즈카 커뮤니티를 함께 탐방하고 돌아올 예정이예요. 엄마와 17개월된 우율이가 아빠 없이 일 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공유하고 싶어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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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1월4일토요일 이른 새벽 4시즈음이다. 오늘은 일본 애즈원 커뮤니티로 떠나는 날인데, 우야가 대여섯 번을 깨서 결국 짐을 3시부터 제대로 싸기 시작해 이제 짐싸기를 마쳤다. 애를 재우려고 옆에 누워있었으나 잔 것도 아니고 안 잔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몹시 피곤하나 잠은 잘 오지 않기도 하고 아빠 없는 날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에 아이들 옆에 누워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중이다. 

<아이들 재우고 짐싸면서 한 컷. 앞에는 빨랫더미>

 

 

<여섯 번째 날>

오늘은 아빠 없는 여섯 번째 날. 

오늘도 율이는 콧물+기침+가래 3단 콤보로 하루 종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나랑 딱 붙어 있으려고 했다. 계획은 원래 아침에 오기로 한 근희에게 율이를 부탁하고 용자에게 우야를 맡긴 뒤 일본에 가는 짐을 쌀 작정이었는데 실패. 그래도 10시즈음 용자가 와서 우야를 배낭에 실어 산으로 가고 근희가 율이를 안고 재워주어 빨래와 집정리는 대략 할 수 있었다. 다같이 점심을 챙겨 먹고 둘은 돌아가고 난 아이들이랑 낮잠을 잤다. 

<용자의 등에 업혀 산행을 나가는 우야의 뒷모습>

 

율이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아 저녁에도 오기로 한 근희에게 조금 일찍 와달라고 해서 소아과를 다녀왔다. 다행히 귀나 코, 목 등에 염증이 심하진 않은 감기인 것 같다고 했다. 우야도 함께 진료를 했지만 우야는 괜찮은 것 같다는 진단도 함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외여행을 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약을 챙겨가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난 왜 그걸 소아과 의사에게 묻고 싶었을까...? 내가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었을라나? 

 

나가는 길에 만난 소라에게 애들 콧물약을 좀 더 챙겨받고, 구나몬에게는 엔화로 여행여비를 받았다. 지난 주말엔 집에 놀러온 명주짱이 아이들한테 봉투로 용돈을 건넸었는데... 육아의 도움말고도 참 많은 걸 받고 산다. 고마운 일이다. 

 

집에 돌아와 근희와 함께 저녁을 챙겨 먹고 아이들을 씻기면서 나도 좀 씻고 콧물과 기침에 좋다는 김쐬기도 해줬다.  욕조에 애들을 앉혀두고 잠시 샤워기를 꽂는 중에 율이가 미끄러져 물속에 빠져버렸다. 아이들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얕은 물이었지만 율이 얼굴이 푹 빠진 상태였고, 정말 깜짝 놀랐지만 소리를 지르지 않고 율이 손을 잡아 자연스레 다시 앉히고는 들어올려 안아줬다. 울이는 약간 놀란 눈치였지만 내가 소리를 지르지 않아 그런지 금세 진정하고 다시 욕조에서 편히 놀았다. 간만에 목욕탕에서 실컷 놀아 그런지 아이들은 기분이 좋은 눈치다.

 

근희가 돌아가고 늘 그랬듯 아이들과 책을 몇 권 읽고 재웠는데 율이가 기침을 하며 자꾸 뒤척였다. 게다가 놀랍도록(?) 멀쩡했던 우야가 기침을 간간히 해서 가슴이 철렁.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서 시간을 갖는게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었는데 그마저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습기를 틀어주고 율이 옆에 붙어 힘들어할 때 물도 먹여보고 토닥이며 다시 재우기를 반복하면서 나도 새벽 5시까지 뒤척였다. 5시즈음 되니 그제야 코로 숨을 쉬며 깊은 잠을 자는 율이. 기침 소리에 마음이 아프다. ㅠㅠ 내일은 성희랑 아침에 1시간 정도 미팅을 하기로 해서 근희와 용자가 함께 와주기로 했다. 피곤하지만 그나마 그 시간을 생각하며 버텨냈다. 

 

 

 

<일곱 번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율이가 계속 운다. 기침에 몸도 힘들고 피곤하기도 한 모양. 혼자서는 버거운 마음이라 근희와 용자에게 30분 정도만 일찍 와달라고 부탁해서 9:30정도에 와주었다. 다행히 우율이는 밥을 먹고 좀 진정된 상태라 근희와 용자가 오고 나서는 잘 노는 듯 했다. 내가 미팅을 다녀오는 동안 상태가 많이 나쁘지 않은 우야는 용자랑 집근처 도서관에서 놀다오기로 하고 근희는 율이랑 집에서 있기로 했다. 

<아침먹고 사이좋게 간식먹는 우율이와 화장실에서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 

 

짧은 미팅 동안 일본 탐방에 대한 얘기, 최근 남편 없이 이모, 삼촌들과 함께 우율이를 보면서의 내 마음상태 등에 대해 얘기하고 나니 힘들었던 마음이 꽤 환기된 느낌이었다. 탐방때 나누고 싶은 얘기들도 생각나고... 미팅을 제안해 준 성희도, 우율이를 챙겨주는 근희, 용자에게도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오니 동네 밴드에 올린 글을 보고 갱구언니가 도라지청을 챙겨다 주고, 재경이 밤꿀을 챙겨다주러 다녀갔다. 그리고 근희가 맛있는 콩나물국을 끓여줘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우율이 모두 졸리는지 밥을 신통치 않게 먹고 낮잠을 잤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낮잠을 자기 시작해서 3시 반즈음 깼다. 아이들이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듯해 마음이 좀 불안했다. 저녁엔 오기로 한 근희가 못 올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부탁했었다. 재경이 5시 반즈음 오기로 했는데 2시간을 버티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 받은 처방전으로 약을 좀 받아가면 좋겠다 싶어 짐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집에 들러 처방전을 가지고가 약을 배달해 주고 갔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일주일을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아프니 정신이 하나도 없고 몸도 지쳤나보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도와줘도 이렇게 힘든데 독박육아는 진짜 영혼을 갉아먹겠다 싶었다. 내가 엉엉 우니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 본다. “엄마가 좀 힘들어서 눈물이 나네...”하니 우야가 옆에 있는 휴지를 들어 내 눈물을 닦아준다. 이런 건 어디에서 봤나 신기하다. 아이들 앞에서 울어도 될까 싶기도 했지만 나오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어 조금 더 울었다. 엉엉 좀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그러고 잠시 후에 근희가 왔다. 저녁에 가고 싶었던 모임이 있었다는데 그것보다 혼자 있을 내가 더 걱정되는 마음에 왔다고 한다. 어찌나 반갑던지... 근희가 와서 내 눈을 보고 울었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마음쓰여 하는 눈치다. 그렇게 근희가 오고 잠시 후에 한 시간 정도 와줄 수 있다던 재경이 비행기에서 먹을 아이들 간식을 생협에서 사왔다. 

 

재경이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동안 근희는 저녁준비를 해주고 난 짐을 좀 싸려 했는데 율이가 또 떨어지질 않는다. 짐을 못 싸고 율이를 안고 있는데 사전에 연락이 없던 구나몬이 들어왔다. 우율돌봄 이모, 삼촌들이 있는 단톡방에 아이들이 아픈 상황을 올린걸 보고 맘이 쓰여 들른 듯 하다. 그렇게 이모가 셋이 되니 아이들이 나랑 떨어져 놀기 시작했다. 

 

이모가 여럿이니 밥먹이는 것도 수월했다. 근희는 저녁을 챙겨주고 재경과 구나몬은 먹여주고~ 그렇게 아이들이 먼저 저녁을 먹고, 재경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동안 나랑 근희, 구나몬은 조금 편히 저녁식사를 했다. 재경이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고 내가 아이들을 씻기고 약 먹이고 챙기는 동안 근희랑 구나몬은 남아서 뒷마무리까지 해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려와는 달리 저녁시간도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짐도 좀 싸고 내 시간도 좀 가져볼까 했는데 웬걸. 9시에 잠든 우야가 수시로 깨기 시작했다. 처음엔 재우면 금세 다시 잠드는 듯 하더니 기침 때문에 불편한지 1시즈음엔 일어나서 한 시간을 넘게 뒤척이고 잠을 못 자서 정말 힘들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내 시간을 포기하고 같이 자면 되는데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떠나려면 짐을 미리 싸야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자는 척 하되 자면 안 되는 그 상황... 고역이었다. 

 

다행히 3시에 깊은 잠에 든 우야를 뒤로하고 거실로 나와 짐을 쌌다. 적게 싸려고 생각했던 짐은 결국 커다란 트렁크 하나를 가득 채웠다. 결혼하고는 늘 남편과 함께 짐을 쌌는데 혼자 싸려니 그것도 참 쉽지 않다.  여러모로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짐을 얼추 싸고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하는데 4시즈음 우야가 또 깨서 옆에 누워 이렇게 글을 쓴다.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한 달은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진 한 주였다. 남편을 만날 날을 하루하루 꼽아가며 보낸 것도 참 오랜만이다. 진짜 간절한 마음(어쩌면 버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글들도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하루를 다 곱씹게 되어 엄청 길어져 버렸다.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내 스스로 돌아보고 싶음 마음도 있었다. 

 

남편이 애즈원에 코스를 하러 간 동안 난 혼자서 코스를 한 느낌이다. 지난 10월에 내가 코스에 들어갔을 때 남편이 똑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때 남편이 나에게 톡으로 매일매일을 기록한 것도 다시 찾아 봤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남편이 오케이 한다면 그 내용도 공유하겠다) 휴우. 여튼 이렇게 우여곡절 많은 일주일이 가고 잠시 후면 우리 셋은 일본으로 떠난다. 아이들의 컨디션이 걱정되긴 하지만 나 혼자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용자, 성희와 함께라 든든한 마음이다. 부디 일본까지 무사히 잘 도착해 남편과의 재회를 할 생각을 하니 좀 떨린다. 얼굴을 보자마자 그간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일본으로 가는 여정과 일본에서의 이야기도 여력이 된다면 써보고 싶은데 어떨지... 장거리 여행을 가려면 이제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