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사람들 인터뷰] 석수 이야기 2 – 종을 넘어서 함께 호흡하는 것들

2020. 5. 12. 23:15동네살이&일상/우리동네사람들 인터뷰

>1편에 이어서.

Q 다정 : 그럼 다른 나라로 가기 전에,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냈어요?

계속 돌고 있었어요. 이렇게 돌아다닌 지 이제 6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시골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대부분 저처럼 도시에서 나고 자랐을 테니까, 다들 비슷하잖아요. 직장을 다니던가, 대학을 다니던가. 그러다 아니라는 감이 대충 오잖아요. 저는 사실 여건이 되게 좋은 편이었어서, 아 이렇게는 하지 말자, 여건도 좋은데 뭐하러 내가 이렇게 목매달며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도시에 살면서 들었어요. 그래서 서울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당장 시골 가도 서울에서 왔어요?’ 하는 외계인 취급하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외로웠어요. 그래서 그때 어차피 외로울 거면 차라리 가까운 나라로 가자. 거기도 시골이 있으니까. 그래서 대만 난좡이란 곳에 길게 들어가기 전에는 계속 일본, 한국, 대만에 있는 시골들을 돌아다니고 있었죠.

 

Q 다정 : 이야기 중에 동아시아를 돌고 있다, 돌아다닌다 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시골에 가고 싶어 졌다거나, 일본, 대만 시골을 찾아가는 걸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이 있을 것 같아요. 장소나 움직임은 다르게 있었어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뭘까 궁금해요.

2014년이 다들 특별하게 왔잖아요. 저에게 기억나는 장면은, 저희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뉴스를 보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졌어요. 원래 시골에 가는 건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거라서 장례식이 끝나면 출발하려던 생각은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 사건을 겪으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근본부터 바뀌어야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말 이건 안 되겠는 거예요. 저는 그 당시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거든요. 학생들 입장에도 당연히 감정이 되고. 아 나라도 안 일어났지, 가만히 있으라는데. 시키는 대로 하지. 심지어 내가 선장이어도 도망갔을 거 같은 거예요. 뭐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화물차도 몇 톤씩 무리해서 집어넣었을 거 같고, 내가 운전수라도 감독관이라도 그렇게 들어갔을 거 같은데. 그런 면에서 진짜 아예 근본이 바뀌어야겠단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본격적인 출발하기 전, 그동안 여행하면서 만났던 일본, 독일 친구들이 일본 시골, 대만 시골, 우프접속을 시켜줬었죠. 일본, 대만, 한국은 더 가까이 있기도 하고 비행기 표가 싸기도 하고, 도시나 시골이 진행되는 속도나 감각이 비슷하고, 생긴 것도 비슷하고. 그래서 그쪽에 가도 내가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럽겠다 생각해서 동아시아 쪽으로 가게 되었어요.

세월호 사건을 보며, 내가 한국 사회에서 받아 온 것들을 재점검하고 싶은데 일본이나 대만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면 다시 보이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래서 가면 더 많이 배울 수 있겠단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Q 다정 : 2014년이 어떤 큰 계기였겠네요. 그 일을 겪기 전에도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살면서, 문제의식은 늘 있었던 상태였고요?

그렇죠. 20살 때쯤 그런 게 왔던 것 같은데. 시키는 대로 다 해서 심지어 좀 성공했거든요? 지금의 감각에 비유하면, 어디 시키는데 투자해서 거기 주식이 엄청 상한가를 치는 것처럼. 수능을 봤는데 점수가 너무 잘 나온 거예요. 꿈을 이룬 듯이.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까 이상한 거죠. 개인적으로 내가 스무 살이라서 방황한다 이런 걸 떠나서, 시스템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느꼈어요. ‘너흰 88만 원 세대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가 뜨기도 하고, 루저, 잉여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웃으면서 나는 루저야, 잉여야이렇게 하면서 자기 자존감을 일부러 낮추는 그런 것들을 접하면서, 문제인 걸 아는데 속으로는 이걸 자꾸 문제가 아니라고 합리화시키는 과정을 계속 겪었던 것 같아요.

 

Q 다정 : 그렇군요.. 이 부분은 공감 가는 게 많아요. 저랑 나이가 비슷하고, 같은 세대이고.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서, 삶의 방식을 전환하고 싶었다는 흐름으로 저는 받아들여졌는데. 그러면 그렇게 한국의 시골도 가보고, 일본 대만 중국 다녀보면서 바뀌거나 전환된 게 있다면요?

사실 전환까지는 아니고. 저도 되게 소심한 것 같아요. 결국은 대학 졸업을 했거든요. 8년 걸렸어요. 휴학도 걸어놓고. 처음엔 계속 취직을 하려고 했죠. 또 우연히 네이버에서 농식품 리서치 인턴 기회도 나서 회사에서 잠깐 일도 하고. 당장 전환할 용기는 없으니까요. 해보고 나니까, 대기업에서 일하는 건 별거 없다. 대기업 사람들 슬퍼한다. 그런 게 느껴지니까 나오고. 그러고 나서는 우프 코리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었는데 거기에서도 아르바이트로 3~4개월 정도 일해보고. 나름 시민 단체 같은 곳에서도 월급 받으면서 일해보니까 이것도 별거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러면 직업 굳이 안 가져도 되는구나 생각하게 됐죠. 그렇게 하나하나 얻어간 것 같아요.

갯벌에서 걷는 것처럼. 갯벌에서 걷다 보면 흔들리잖아요. 이쪽 한번 걸어보고 기우뚱 대면 저쪽으로 한번 가보고. 그런 느낌으로, 아 대학 가보니까 대학 별 거 없네, 감각이 생기고. 대기업 가보니까, 회사 별 거 없는데, 월급 받는 거 별 거 아닌데. 시민 단체도 뭐 그렇구나 이거 구나 해보고. 이제야 알게 된 건 긴 호흡이 필요하구나 싶어요. 그런 하나하나를 조율해나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돈에 대한 감각이라든지. 아니면 농사할 때 정말 구체적으로 내가 씨앗을 어떻게 심어야 잘 자라나 이런 감각이라든지. 몇 시에 일어나야 된다든지, 밥을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아니면 쉬는 방법은 도대체 뭔지. 그런 걸 계속 실험을 해보고 있는 거 아닐까요.

 

Q 다정 : 듣다 보니 큰 시스템에서 벗어나 정해진 목표를 두지 않고 여기저기 가보고 하는 것 자체가, 이런 삶의 선택 과정 자체가 변화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선택해오는 느낌.

늘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기도 했는데,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지내 온 석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그런 맥락에서 우동사에서도 어떻게 지내고 싶은 걸까? 궁금해요.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 하모니카를 같이 분다던가, 중국어 공부, 유라시아 공부도 같이 해 본다던가, 요가를 같이 한다던가.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우동사에서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희 얼마 전에 밥상 모임도 했잖아요. 그런 걸 하면서 같이 사는 힘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대만에서 이렇게 산지는 3~4년 되었고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 우여곡절도 많은데, 여기서 내가 뭘 얻어가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리고 제일 큰 건 대만 애들도 이리로 데리고 오고, 한국 애들도 거기로 데리고 가서 많이 섞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 혼자서는 한국에서 섞이기 힘든 부분도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섞어보는 작업도 하고 싶다는 것도 있었어요.

 

Q 용자 : 섞는다는 걸 좀 더 설명해준다면?

이번에 정훈이랑 원래 계획은 볼음도에 일본 친구도 부르고, 대만 친구도 많이 부르는 거였어요. 이게 되게 재밌거든요. 동아시아 친구들 만나보면 똑같이 생겼는데 너무 다른 거예요. 하는 것들, 생각하는 방식, 습관, 생활적인 것들. 그게 좀 충격적으로 다가와요.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비슷하게 닮아있는 거 같은데 각자 나라에서 나고 자라서 받은 습이 있어서 생각하는 방식 이런 게 너무 달라요. 이걸 섞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 감각들이 섞이는 게 재밌다고도 생각했고. 여민이가 일본에서 지내면서 어떤 걸 받아온다던가 그런 섞임인 거 같아요.

저는 디테일을 여기에 많이 넣고 싶었어요. 동아시아에 대한 큰 흐름을 정훈이 만들고 있고, 거기에 몇 년 동안 제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많이 섞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Q 다정 : 이제 30대에 들어섰다고 들었는데, 30대는 어떤 흐름으로 지내보고 싶은지?

30 되면 이립이라고 하잖아요. 뜻을 좀 세우고 폼나는 이름을 지어서 제대로 소개하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반복하며 다니는 거죠. 그래서 지금 생각으로 서른 살 되어서 하고 싶은 건, 인간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 거에 주목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이거 며칠 전에 심은 개복숭아인데 단형(오반장님)이 심으면서 계속 말 걸더라고요. 잘 자라라 이러면서.

일본, 대만 섞이고 이런 것도 중요한데 더 근본에 와야 할 건 이렇게 종을 넘어서 함께 호흡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만들고 있는 티피도 그 과정에 일환이라 생각하고요. 티피를 일본 히피들이 많이 세우는데 거긴 대나무가 많으니까 대나무 8m짜리 이런 걸 잘라서 써요. 그렇게 하면 쉬운데 여긴 대나무가 없잖아요. 그래서 소나무 잘라서 하는 중인데 , 대나무 8m는 5년 이내에 다 자라요. 그런데 저 소나무는 나이테 세어보니까 한 30? 저랑 비슷한 정도가 되어야 저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 세월을 저는 한 20분 만에 자르는 거죠. 자르면서 대화를 한다던가 존재에 대해 더 느끼고. 어제까지 하던 작업은 소나무 껍질을 낫으로 벗기는 거였는데 껍질 벗기면 속살이 드러나고 송진이 막 튀겨요. 그런 것들을 제 안에 넣는, 저한테 깨우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서른 살부터 좀 더 본격적으로, 반복적으로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예요.

별 보면 기분이 좋다던지, 산 정상에 올라서 아래를 바라볼 때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한 거라던지,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혈액이 잘 도는 것 같다던지. 그런 것들을 뭉뚱그려서 우주하고 연결된다라고 표현하면 좋지 않을까요. 다들 일상에서 겪는 얘기들을 그렇게 표현해도 좋을 것 같아요. 병아리 솜털 만질 때 기분이 좋다거나 강아지 산책할 때 오가는 호흡이 좋다던가, 아니면 사람끼리 이렇게 얘기할 때 눈빛이나 열기라던지, 내가 취하게 되는 자세라던지. 뭐 그런 것들이 다 우주.

[볼음도에서 티피만들 때 사진]
[함께 티피를 만드는 사람들. 가운데 회색셔츠가 석수]

*아래는 관련한 석수 페이스북 글입니다. 출처 : www.facebook.com/seoksoo.ko

하나,둘,셋,넷...

스물 다섯개의 나이테..

당신의 뿌리를 타고

흘러든 수액이

단단한 뼈가 되고

밀려난 속살은 껍질이 되고..

낫으로 조금 거칠게 벗겨낼 때,

송진향이 튀고 내 몸에 뭍어나요.

같이 작업하는 제제는 올 해 스물셋

나는 서른 하나

그만한 시간들을 헤아려 보니

바닥에 누운 열여덟 그루의 소나무의

생명은 세월은

얼마나 길었을까요

 

>3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