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견문' 저자 이병한 초청] 강연을 듣고 ⓵

2019. 11. 22. 11:10유라시아학당

 ⓵  명주와 숙곰의 이야기

 

 

"나도 좋고 남에게도 뼈때리게 좋아보여 그것으로 세상을 물들여갈수 있는 샘터 같은 곳. 

그게 개벽마을일까." 

 

 

편안해 보이는 이병한씨. 동네에서 강의 하고 힘받아 가는 것 같아 좋았다. 강의가 끝나고 내 안에 이야기들이 넘실넘실 하는 것도. 밤늦게까지 동네에서 발이 안떨어졌던 명주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다음날 식구들이 이병한씨의 반짝 거리던 눈빛에 대해 꺼내주는 것도. 참 좋았다. 각자 마음안에 어떤 것들이 피어났을까.

역시 기존의 사고, 관점이 탁 깨지는 듯한 강의. 유라시아견문 읽으면서도 항상 느끼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미스터 션샤인에 대한 시선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정말 재밌게 본 드라마였다. 미국, 일본 만을 상상하는 남한적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상상도 못해봤다. 정말 그렇겠다. 구한말, 아직 분단되기 한참 전일텐데.. 지금의 시선으로 그때를 반쪽만 구현한 거였겠다. 정말 그 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말 지금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숙곰 

 

 

이병한의 글을 길잡이 삼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새로운 역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웠다. 단순히 세계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면 유라시아 학당(의 실험)이 이렇게 오래 이어져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가 어떤 흐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왔는지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독법이 생겼다는 점이 아주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마음속에 굳어져 있어 변하지 않은(않았던) 생각들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조금씩 해체해가는 공부가 함께 있었기에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속에 발 딛고 있는 나를 새롭게 감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의 관계망 안에서는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그야말로 다양성으로 통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성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방관자적 태도가 아닌 서로 진심으로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사회가 되길 바라는 것이 우리 공부이자 실험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실험의 장을 단단하게 단정하게 만들어 가고 싶다.          

 명주

 

 

"결국 나를 잘 살피는 일과 다른 사람을 보아주는 눈, 들어주는 귀 역시 활짝 열어두는 일이

함께여야 함을 놓치지 말자."

 

 

- 막연하게 비슷한 걸 꿈꾼다고는 하지만 좀 더 분명히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이병한씨가 도대체 '개벽'을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건지. 아직도 잘 그려지진 않지만 이번 강의로 좀 더 이해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경인, 경천, 경물, 삼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구나. 그것으로 가는 방법은 학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니까 그걸 잘 살려서 해보고 싶어하는 구나. 동학을 학술대회에 가서 이야기하고, 18세기 청나라의 부상을 예상하며 북학을 공부한 사람들처럼 다가올 인공 미래를 공부하고, 쿤밍 생물다양성회의 퍼포먼스를 기획하며 삼경을 구현해가는 구체적 메세지나 이미지를 세상에 계속 던지고 싶고. 개성에 동아시아종합대학을 여는 기획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부대끼며 새로운 것들이 퐁퐁 솟아날 장을 창조하고 싶어하는구나. 나와 우리는, 정말 삼경을 구현해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의 하루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인간관계는 어떤건지, 그런 인생은 어떤건지. 그게 정말 나도 좋고 남에게도 뼈때리게 좋아보여 그것으로 세상을 물들여갈수 있는 샘터 같은 곳. 그게 개벽마을일까.

숙곰

 

실험의 장을 단단히 단정히 만들어 가고 싶다는 바람은 앞으로의 유라시아 학당의 모습을 전망하기에 앞서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가고 싶은지)를 다짐하는 일이기도 하다.
'선생(先生)'들의 지혜를 익히고 배우는 것이 단단하게 이루어 가는 일이라면, '후생(後生)'들이 살아갈 세상을 채비하는 것은 단정하게 이어가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중생(中生)인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벽청'이 '개벽하는 청년'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럼 나는 '벽중', '개벽하는 중/중년'이라 스스로를 정의하며 생각했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중심은 나를 살피는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었다.
3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 중 개벽학당에서 'K-Studies LAB'으로 이름을 바꾼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은 이유는, 공(共)보다 사(私)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을 돌아봄직한 물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로샤는 K-Studies LAB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배경들을 이야기하며 '이걸(개벽을) 소수만 할 게 아니니까.'라는 말을 했다.
소수도 아닌 오직 나 한 사람에 몰두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며 물음표를 붙이려 했었는데, 느낌표로 마무리해야 함을 인정하게 됐다.
정명(正名)을 찾는 일.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짓는 것에도 많은 기운이 필요하다.
하물며 그 이름대로 사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공력이 필요하겠는가.
이렇다 저렇다 다짐하고 계획했지만 그렇게 살고 있는가 점검할 때마다 느꼈던 미진함은 혼자만 재미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내가 누리는 재미의 의미를 전하는 일에 소극적이어서 였구나 싶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밑바탕에는 내공 부족이 가장 큰 이유로 자리하고 있다.
사는 일..삶..사람의 준말이 삶이라는,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좋은 사람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신영복음을 떠올려 본다.
결국 나를 잘 살피는 일과 다른 사람을 보아주는 눈, 들어주는 귀 역시 활짝 열어두는 일이 함께여야 함을 놓치지 말자.
부족한 내공을 채우는 일은 이렇게 해나가면 되겠다.
우리 유라시아 학당이..동네가 사람을 만나고 삶을 살아가는 풍성한 장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도 재미 있는 의미 있는 작당들 힘껏!!

 

명주

 

좌 숙곰, 우 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