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공동주거러] 숙곰이야기 #3. 같이사는 재미? 챙겨주고 챙김받는 기쁨, 옆에 누가 있다는 안심.

2020. 6. 7. 14:00동네살이&일상/우리동네사람들 인터뷰

진선 : 오래 버틴(?)자 숙곰, 숙곰에게 같이 사는 재미란 어떤건가?

 지금은 진솔이랑 주로 둘이 집에 있다. (숙곰은 우동사 402호에 산다. 402호에는 정훈, 쩡아, 3살 여민이, 진솔이 그리고 숙곰이 산다. 주말마다 남자친구인 승민이도 온다. 정훈은 5월 내내 볼음도에서 단디 윤자와 불멍캠프를 열고 있었다. 쩡아와 여민은 일본 스즈카 커뮤니티에 있었다. 쩡아는 스즈카에서 아카데미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있다. *편집자주) 예전에 혼자 살 때는 전혀없던 욕구인데, 옆에서 밀접하게 지내면서 있으니까 일상에서 되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꺼내게 된다. ‘오늘 이런이런 일이 있었다!’ ‘나 오늘 이랬어!’ 이런 얘기를 주절주절 하고 싶어진다.

 나는 집에 혼자 있으면 나는 좀 처지는 스타일이다.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아침에 잘 일어나진다.같이 얘기를 하게 된다거나, 하고 싶은게 생기는 게 좋댜. 최근 진솔이랑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애니어그램 9번이라 그런가보다’ 했다. 9번의 특징은 혼자서는 의지가 잘 안생기는, 주변에 의해 불러일으켜지는 유형이라고 한다. 9번 유형의 안좋은 점은 한없이 처지면 게으름의 최대치까지 빠지는, 티비를 계~속 본다거나, 아무것도 안하고 주우~욱 잠만 잔다거나. 예전에는 그런 경험이 꽤 있었는데 우동사 와서는 그런 적이 없다. 가까이에 사람들이 있는 것이 나에게 좀 좋은 느낌이 있다.

진선. 뭔가 하고 싶은 게 불러일으켜진다는 표현이 좋은 것 같다.

숙곰. 나는 청소하거나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거나 같이 하고 싶다거나 할 때가 있다. 이진솔 바쁜데 그녀가 먹을 수 있는걸 집에서 챙겨준다거나, 설거지 쌓여있으면 설거지 하는 건 나한테 어려운 일 아니니까 그런 거 해주면 나도 마음이 좋고. 요리하면 나눠주고 싶고 텃밭 수확하면 나눠주고 싶은데 혼자 있으면 재미가 덜할 것 같다. 그런 것들을 해가는 일상이 풍요로운 느낌이다. 특별히 별거 안해도 안심되는 느낌. 언제든 뭘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느낌.

 얼마 전에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는  남자친구랑 살펴주고 살핌받는 것들을 하고 있지만,  그런 관계가 더더 많아지는게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린 남자친구 만으로는 안되는 것 같다. (웃음) 

숙곰이의 텃밭과 밥상

 

진선. 서로 해주고 해받는 기쁨이라니 아주 ‘슬기로운 공동생활’ 같다. 그런데, 나갈까도 생각한다고 했다. 그건 어떤건가?

숙곰.  '집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지내고 싶다'라거나 '정돈되어있는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원룸에 살 때 화장실에 물기 하나없이 닦고 살았다. 같이 살면서 그런 부분이 반응이 많아 올라왔다. 최근 <자신을 알기 코스>에서 살폈던 테마가 있다.(일본 스즈카의 사이엔즈 스쿨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장이다. *편집자주) '모두 일만 벌이고 뒷정리하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 정말 빡쳤다. '고구마 엄청이 구워놓고 그대로 놔두고 갔다. 퐁퐁 떨어진거 며칠 째 같은 상태인데 아무도 안채워놓는다. 요리는 다 해놓고 안치운다. 냉장고에 썩고 있는데 안버린다. 저런 거 다 내가 챙긴다. 치우는 거 아무도 신경안쓴다' 이렇게 생각되니까 빡치고 '여기서 살면 평생 이러겠지, 뒤치닥거리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며 한없이 무거워졌다. 

 코스에 다녀와서는 ‘그때그때 쌓인게 있구나’ 싶더라. 보면 '저거 치웠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데' 하는 게 있는데 가볍게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구나. 내가 다 치워야된다고 생각하는 상태였구나. 그게 쌓였구나 싶더라. 내가 안치워도 되고, 치워달라고 부탁해도 되고 여유될 때 천천해 해도 되는데.  그 이후부터 조금씩 이야기해보기 시작하면서 조금더 쾌적해진 느낌이다.  최근에 정훈 진솔과 지내면서는 꽤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한다. '이것 좀 치워주면 좋겠는데 나 이런거 안보고 싶어', '저거 언제 치울 거야' 물어본다던지. 그러면 사람들이 꽤 움직여준다. 혹은 며칠까지만 놔두면 안돼 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부탁(요청)하기 어렵다. 반대로 거절하기 어렵다. 싫은 소리 하기 어렵다. 혹은 싫은 소리 듣기 싫다. 이런 게 우동사에 같이 살면 꽤 드러난다. '이거 ㅇㅇ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하는 생각은 있지만, 귀찮아하지 않을까 라던지 거절하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 일종의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하기 싫다고 하면 거절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진다던지. 

 아이들을 보면 '이거 해줘' '싫어' '아이 해줘. 하고 싶어' 이런 표현이 꽤 가볍게 오고 간다.  아이들 뿐 아니라, 가족이나 애인 사이에도 그런 기분들이 슥슥 자유롭게 오고 간다. 상대에 대한 마음의 거리가 드러나는 것이려나. 바라는 게 있지만 말로 나오지 않는 상태는, 꽤 상대를 신경쓰고 있는 상태이지 않을까? 이런 거 해달라고 하면 싫어하려나 라던지,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이런 상대에 대한 긴장감 경계심이 같이 살게 되면 잘 드러난다. 이런 걸 나도 계속 살펴보고 연습해가는 것 같다. 

 있는 마음을 누르지 않고 그대로 슥슥 이야기할 수 있으면 점점 더 같이 사는 게 즐겁게 쾌적해진다. 가족인 애인같은 관계가 점점 많아지는, 새로운 가족이라고나 할까.

 

숙곰.  좀 있으면 정아랑 여민이가 일본에서 들어온다. 한 사람이 오면 일상이 그만큼 더 풍요로워지는 것도 있지만, 아이랑 같이 산다는게 나에게 꽤 반응이 올라온다(불러일으켜진다). 시각적으로. 어질러져있다라고 느껴지면  몸이 먼저 움직여지는 느낌. 생각으로는' 안(쳐다)보고 방으로 들어가면 되겠지' 하지만 신경이 간다고 할까. 어떨 때 정신놓고 있으면 하루종일 집이나 부엌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그쪽에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나갈꺼야' 라는 건 아니다. 요즘은 반발심이 일어난다기보다는 '어떻게 살면 쾌적할까' 살펴보는 느낌이다. 여러가지로 생각은 계속 굴러가지만 정아랑 여민이랑도 지내며 얘기하면서 살펴보고 싶다. (*진솔이가 누구든 정돈하기 좋게 장난감별 자리를 표시해서 식구들과 공유한 사진이다)

 

진선. 있는 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상태, 결국 누구랑 어디서든 그게 베이스가 아닐까싶다. 그런 점에서 3월에 반상회와 그 과정이 숙곰에게 어떻게 남아있나?

(*편집자주 : 3월말 우동사 여러 집의 멤버가 조정되는 과정이 있었다.  다섯집 식구들이 내부 이동하기도 하고,생활비를 공유하며 살림을 같이하던 401호 402호가 분리하는 과정도 있었다. 402호 식구들이 좀더 단촐하게 지내고 싶다는 욕구에서 였다.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싶은가. 누구와 지내고 싶은가. 등이 적극적으로 드러나기는 과정이기도 했다) 

숙곰. 반상회 전후로 식구들과 이야기하며 이런저런 있는 마음이 더 드러난 거 같다. 몇 가지가 있는데 이야기하면서 '내가 부엌을 주도적으로 쓰고 싶어하는구나'를 알았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뭘 더 사다놓으면 좋을지 이런 걸 파악해서 챙기고 싶은 것도 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게 냉장고에 많이 들어와있다거나 누가 넣어놓고 방치해서 썩고 있으면 신경이 쓰인다. 살림을 챙기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 같다. 한편으로 나는 뭔가 요리가 많이 되어있으면 안하게 된다. 먹을 게 없으면 또 움직이게 되는데 ,그럴 때 내 안에 뭔가가 살려지는 느낌, 그런 게 좋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401,402호 살림을 분리하는 이슈가 좀 컸던 것 같다. 처음엔 (401호 멤버인) 단디나 신짱도 원하면 그렇게 해야지 얘기했지만 약간 서운한 건 있던 거 같다.  단디가 '우리의 좋았던 관계는 벽지에 있었던 것인가' 라며 뭔가, 드는 마음 표현한 것 같다. 그런 걸 들으면 상대가 서운할까봐 이쪽에서도 조심스러워지는 마음도 있는데, 그래도 어떻게 지내고 싶은건지를 더 이야기해갔던 것 같다

진선. 지금 지내면서는 어떤가?

숙곰. 주로 문을 잠궈놓고 지내는데 예상치 못한 사람이 안들어오니 안정적으로 지내는 느낌이다. (401호와 402호를 분리하기로 하면서 402호는 그동안 잠그지 않던 현관문을 잠그게 됐다.)  샤워하고 옷벗고 편하게 나온다던지 한다. 사람들이 올 때 초인종 누르는 것도 처음엔  좀 귀찮았는데 이제 괜찮다. 누가 오는구나 예상되니까 편하기도 하고.  생활비 분리되서 살림이 쪼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것도 생각보다 괜찮다. 

우동사 공동주거 멤버 반상회 사진

 

 복작복작 달그락달그락 하면서 같이 살면서 하는 가장 큰 공부는 사람에 대한 공부인 것 같다. 있은 마음을 서로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관계, 긴장감없는 유연한 관계, 윤기있는 사이를 연습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동사라는 것도 뭔가 정해져있는 게 있는게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 한 사람 한사람의 욕구나 바램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 과정이지 않을까? 조건, 상황, 정한 일이나 규칙을 지키느라 우리 각자의 하고 싶은 기분이나 욕구를 누르지 않기, 지금 옆에 같이 있는 사람이 어떤지를 더 살펴보아가기, 그걸 연습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