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공동주거러] 숙곰이야기 #4. '여기에 스승도 있고 도반도 있고 다 있구나. 여기서 쭉 살면되겠구나.'

2020. 6. 8. 14:35동네살이&일상/우리동네사람들 인터뷰

얼마 전 친구 동하와 이야기나누다 백일출가(이하 백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백출을 갈 때 ‘집을 불사르는 마음으로 가는 것’ 이라고 이야기 한단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집은 안락한 곳 돌아갈 곳인데, 불사른다는 것은 그것을 없애버려서 돌아갈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가는 거’란다.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가 그런 의미이겠구나 싶다.

 동네에 워낙 백출 다녀온 친구들이 많아서(흔해서?^^)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했는데 ‘집을 불사르는 마음’으로 백출을 한다니 별거 아닌 게 아니구나 싶었다. 정토회 활동을 하는 동네 친구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수행을 해가고 있을까 궁금하다. 무언가 바램 열망들이 있기에, 자발적으로 그런 수행적 삶을 사는 거겠지 싶었다.

숙곰이도 정토회를 알고 활동을 시작한지 벌써 12년째이다. 그녀의 오랜 수행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진선. 정토회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숙곰. 대학 때 하고싶은 게 굉장히 많았다. 이것저것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서 항상 포스터를 보고 다녔다. 국제자원활동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그것도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정토회 선재수련 포스터를 봤다. 어디서 주최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최측인 ‘대학생 정토회’에 대해 찾아봤다. 그런데 ‘아니, 이런 단체가 있다니’ 할 정도로 소개가 꽤 마음에 들었다. 내가 관심있는 게 그 안에 다 들어있었다. 다루는 테마가 불교수행, 환경운동, 남북평화, 국제자원활동이었다. 학교에서 풍물패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손가락 정도 담그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위 같은 건 내 성향에 맞진 않아서 나가진 않았는데 518에 대한 학습이라던지 이런 건 많이 공부했다. 학교 수업들으면서 생명평화운동 같은 것도 접하고 꽤 관심이 있었다.

‘이 단체 너무 맘에 들어’, ‘여기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했다. 면접에 붙었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다음날부터 나가서 매일 출근했다. 그 면접에 지금 동네에 같이 사는 정재원이 있었다.

 

진선. 불교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

숙곰. 그 즈음 누가 법정스님 책을 선물해줘서 읽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책이었는데 너무 좋아서 접어놓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진선. 그런 시작이었구나. 그렇게 가게 된 선재수련은 어땠나?

숙곰. 선재수련 첫날 자기소개 테마가 있었다. ‘나는 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꿈꾸는가’ 였다. 그때 피피티로 발표했는데 얘기했던 내용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픙물패 활동할 때 여름마다 지방에 전수를 간다. 방학하면 한달동안 내려가 있고 그랬다. 폐교에서 우리끼리 밥먹고 술마시고 밤새 장구치고 북치고 하면서 90명~100명이 단체로 함께 지냈다. 되게 좋았다. 사람들이랑 맨날 추리닝입고 지내는데 시골마을에서 지내는 하루하루 일상이 너무 좋고 재미있었다. 걱정할 게 하나도 없고. 그때 사실 한창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앞으로 어떡하지’하는. 하루는 운동장에 앉아있는데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여기서 이렇게 즐겁게 지내는데도, 왜 이렇게 걱정하고 머리가 복잡하지’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정토회를 만난 거다.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해서 특별해지려고 했던걸까. ‘행복은 그렇게, 열심히 뭘 해서 오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정토회 와서 깨닫게 됐다. 그때 ‘아, 이제 평생 정토회활동만 하면 되겠구나. 여기에 스승도 있고 도반도 있고 다 있구나. 여기서 쭉 살면되겠구나’ 생각했다.

 진선. 뭔가 가벼워지게 된 건가? 

숙곰. 대학 다니면서 뭘할까 어떻게살까 한창 고민했다. 졸업하면 약사를 할텐데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약사가 되고 싶었다. 운동권 공부모임애서 공부도 했다. 사회약학 공부해서 보건의료 정책같은 거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미국유학도 가야되고 대학원도 가야되고... 생각하니 엄두가 안났다.

그런데 정토회 만나면서는 그런 거 다 안해도 되는구나, 약사 안해도 되는구나, 의미있는 약사가 되지 않아도 되는구나 했다. 왕의 지위를 버린 붓다처럼. 내 인생에서 그때 정토회 만난 게 가장 큰 전환인 것 같다. 지금도 그 큰 흐름 위에 있는 느낌

진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건가? 어떤 내적 변화가 있던걸가? 

정토회에서 만난 실무자들 봤을 때 다들 뭔가를 안하고 정토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약사든 회사원이든 사업이든 이미 뭔가 가지고 있는 상태로,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뭔가를 해보려는 사람을 넘치고 깔렸다. 하지만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그게 어떤 일이든간에 필요한 일이라면 나설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게 좀 감동이었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거라면 굳이 약대 졸업안해도 되겠구나, 그런 복잡한거 안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 게 깨지는 과정이 있었다.

정토회에서 만난 첫 인상이 다들 너무 잘 웃는거다. 가벼워보이고. 검소한 느낌. 그런 게 가장 끌렸던 것 같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도 저렇게 인생 멋잇고 가볍고 의미있게 잘 살고 싶다. 행복하게. 그런 전환이 좀 됐다.

진선. 너무 정토회 이야기하는 것 같긴한데, 들으니 더 궁금해진다. 정토회에서는 어떤 어떤 활동들을 했나.

숙곰. 초반엔 국제자원활동팀이었다. 국제자원활동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베이스는(핵심은) 대학생들한테 전법하는 거다. 마음공부를 전하는 거다. 내가 정토회를 만나 삶의 전환을 한 것처럼 다른 대학생들에게도 전환의 물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2012년 대선 때 청년당이라고 창당해서 정치활동도 했다. 그때가 우리나라와 미국, 둘 다 대권이 바뀌는 증요한 시기였다. 정당활동으로 2012년을 보내고 평화재단으로 넘어왔다. 평화재단은 평화통일을 위한 교육, 정책활동, 조직화 등을 했다. 그때도 대상은 청년들이었다.

한창 활동할때 숙곰이 사진. 좌측 사진의 왼쪽 두번째가 숙곰이다. 

 

얼마전 숙곰의 초대로 소희라는 친구가 동네에 놀러왔었다. 소희는 미래당 공동대표로 올해 총선에도 미래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었다. 숙곰이 활동했던 청년당의 활동이 지금의 미래당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다. 대학생 정토회, 청년당 (지금의 미래당), 그리고 청년주거공동체 우동사. 숙곰이의 움직임에는 꽤 청년이라는 키워드가 줄곧 붙어있던 것 같다.  이런 청년활동을 지나 이제 우린 점점, 사회의 허리가 될 청장년 혹은 중년으로 넘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건 아닐까.  (숙곰은 아직 몇년이나 남았고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진선. 관심있던 분야이고 의미도 있는 활동이라 꽤 재미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활동을 쉬게 된 것인가?

숙곰. 평화재단 활동하면서 뭐든 도움이 되는 느낌이 좋았다. 힘들었던 건 마음 공부를 제대로 안해서 그런 거 같다. 스님 말을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듣긴 했는데 마음공부하는 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안했다. 그게 당시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게 더 재밌고 좋았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여기있는 느낌. 마음공부는 약간 시늉만하는 느낌. 안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 일하는 거랑 같은 마인드로 일하니까. 항상 사람은 없고 할 일은 많다. 하기로 했으면 해야하고 제대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힘들었겠지

진선. 그렇게 일하다 번아웃이 된 건가?

숙곰. 그렇게 빡세게 일할 때, 감각적으로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런 기억이 남아있어서 일을 밀어내려고 한다. ‘싫어!’ 하고. (그 감각은 어떤 걸 말하는 건가)

진선 :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는 걸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숙곰. 내가 단도리 할 수 있는 정도만 하고 싶은데 항상 넘치는 거다. 그런 게 너무 싫었다.  A부터 Z까지 내 손에 딱잡고 일하는 성향인데 변수가 생긴다거나 새로운 일이 자꾸 생겨 그 범위에서 계속 넘어가니까. A부터 Z까지 챙길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자주 온다. 그럼 잠을 안자야하는거다. 여기 검암에서 출근하면 서초까지 한시간 반이 걸린다. 가서 회의하고 새벽 한 시 막차타고 들어온다. 그렇게 출퇴근하고 주말에 워크숍을 갔다. 그렇게 지냈었다. 쉬고 싶을 때도 있었을텐데, 쉬는 건 전혀 생각도 안됐다. 그런 걸 겪으면서 트라우마처럼 빡세게 하게 될 상황을 미리 차단하려는 게 생긴 것 같다. 안할꺼야!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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