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후스테이

2020. 7. 27. 09:41볼음도 프로젝트

 

7/10(금)~7/11(토)

우동사 301호에서는 불멍후스테이 라는 이름으로 
불멍 or  길멍을 참여 했던 참여자들 끼리 모여서 소감을 나눴어요.

 

5월에 시작했던 볼음도 불멍캠프가 
벌써 끝난지 1달이 넘어가는 지점에 만난 사람들에 반가운 기운이 느껴졌어요.

 

갑작스러운 번개에 많은 참가자가 있지는 않았지만,
이야기 나누면서 자신의 변화나 달라진 감각들을 나눴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 나눠 봅니다. 

 

지금 우동사에서 단디, 석수, 바태가 다시 길멍에 참여하다가
곧 돌아오게 될꺼 같은데, 또 어떤 소감을 전해줄지 기대가 되네요.



소감문
(은 그때 제 기억으로 작성한거라 다를 수 있어요.)

참가자A
불멍에서 어디가서 노래를 잘 안부르는데, 내가 잘해야된다. 이런게 내려가니깐 노래를 부르게 되더라. 몸이 쾌활해서 늦잠도 자고, 컨디션이 좋고, 친구들하고 꿈같은 시간을 보낸거 같아. 역시 꿈은 현실로 돌아와야 보이는 구나 했네. 그때 힘을 받아서, 지금에 내면을 파고 들수 있는거 같아 

길멍은 유체적한계를 경험했던거 같아. 첫날 자니깐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었어 걷다 보니깐 괜찮아지긴했어.
밖에 노숙해보는 경험이 없어서 그걸 깨볼수 있어서 좋았어.

길멍에서 사람들끼리 감정의 부딛침이 있었는데, 그게 그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불편한 감정들도 걸어다니면서 휘발되고, 좋은 감정만 남더라.

참가자B
불멍은 자연속에 있고, 많은것들이 새로운 상태에 있어서, 이렇게 내 마음을 놓아도 되는가라는 느낌도 남았고, 마음을 관찰하면서, 다른 사람들하고 지내고, 내가 움직이고 싶을때 움직여도 된다는 안정감이 있었어. 꼭 해야 해서 하는게 아니라, 내 마음이 움직일때 움직여도 생활이 된다는게 신기하고, 좀 더 안정된 느낌이 행복감을 준것 같아. 변함없는 루틴에, 내 스케줄을 내가 조절하는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던거 같아.길멍은 좀더 도전하는 느낌, 첼린지 하는 느낌이 있었어,

의식주를 길에서 무일푼으로 해결하는 그래서, 자신감이 생겼던거 같아 불멍은  이 상태와 공간감, 사람들이 좋았는데
길멍은 불멍의 상태를 일상으로 가지고 올 수 있구나. 불멍처럼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내 행동력이 될수 있고, 안해보던걸 해보면서 밥도 달라고하고, 잠도 모르는 사람들집에서 자고 그래서
좀 더 확장되는 느낌, 두려움이 사라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서

도시에서 안정된 상황에서 불안 했다면, 길멍에서는 불안한 상황에서 더 안정감을 느끼고 그런 자신감을 느끼고 의식주를 해결 할 수 있구나. 불가능을 도전해 보는 느낌. 목적지 없이 걸으면서 게더링이 가능할까 하는 것도 있었네.

참가자C
길멍하면서 노숙을 했는데, 따뜻하게 잘 준비가 되질 않은상태에서 비가오고 칼바람이 부렀어 다행히(?) 침낭한개와 박스정도만 있었는데, 4명이서 붙어서 정자에서 노숙했는데,

사람 체온이 따뜻하구나 그때 알았어

볼음도에 있으면서 사회물이 안빠져서 힘들었어.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그때가 생각나는거지. 그 끝장나는 유동성 그때는 적응이 안되었는데, 지금은 적응되기도 하고 그리고 나서 길멍을 같이 가자고 했는데, 갈 마음이 1도 없었어. 그러다가 우동사에서 길멍팀을 만나고, 5월 불멍할때 생각도 나고, 여기와서 사람들의 신나는 분위가 느껴지고  길멍 가볼까? 

그런데 나는 카드 한장들고, 밥 사먹고, 찜질방 가서 잔다.는 생각으로 갔어. 활산장에서 잔다는 미래가 있으니깐 출발했는데,

웬걸 다리 밑에서 냄비 주어서 불 악착같이 피우고, 가져간 3분카레에 햇반2개 나눠 먹었어. 자전거를 주었는데, 편하게 길따라 가면 되는데, 굳이 인천에서 부천찍고, 걸어서 서울가던 팀보다 늦게 도착하고 들어 왔어. 땀을 엄청흘리면서 약 40km자전거를 타고 갔어.  도착하자 마자 맥이 풀리고 나는 뭐하고 있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어. 잘 준비를 해야지. 찜짏방에 간다던 석수는 노숙할 준비를 하더라구. 헌옷함을 뒤졌는데, 

메이커 옷들만 나오고 그걸 들고와서 입고, 막걸리 사와서 한통을 마시다가. 자리타가 오고 활산장에서 자게 되고, 밤에 불끄고 촛불에 의지해서 이야기를 깊게 했어.

그때 내적인 것을 찾는 모드가 켜졌어.

불멍할때는 큰 변화는 없었는데 그때가 기반다지는 시기이긴 했어. 그때가 없었으면 길멍을 안했을테니깐, 길멍은 불멍의 실전판이랄까? 직접적으로 해보면서 물건,음식을 받을 수 도 있구나. 돈이 전부인 세계에서 받아서 쓰는 세계가 열렸어. 내가 살던 세계와 다른 세계가 있구나. 그래서 만나면 다른세계를 탐구하게 되고,  계속 물어보고, 무명, 희망 등등 을 만날 때 마다 몇시간 물어보고, 이야기 나누고, 그걸 하고 있어.확실히 유동성을 배우고 있어.

여기돌아오면서, 느끼는게 있는데, 차를 타고 우동사에 왔는데, 주변이 상가건물로 바뀌니깐 도시 모드가 켜지더라구. 사람과 사람으로 느껴지던 감각이, 시간과 돈으로 계산됨이 느껴지는 내 감각이 느껴지는거야. 코드가 바뀐거지. 이 느낌이 있구나. 보는 관점이 달라진거지. 앞으로 알수 없다에서, 예측 가능한 세상으로 와 버린거지. 

이걸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이 되더라구. 그렇지만
약속하던 느낌에서 약속 안하는 느낌해보려고

집에가면 생각이 바뀌는거 같아. 자유시간이 없어.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 잡혀 있는 느낌.
길멍에서 많이 버리잖아.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집중하게 되는데, 

집에서는 많은 물건이 있으니깐, 거기에 사로 잡히는 거 같아. 그래서 집이 있는데 그 집을 뺴고, 소유한걸 줄여보는게 어떨까?
요즘은 그 생각이 들어서 다시 처음 원래대로 돌아갈수도 있지만, 어떨까 싶어.  이런 느낌들을 처음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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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9 13:59

    모임에 대한 기록 잘 읽었습니다.
    불멍과 길멍, 우동사.
    이 공간들에서 참가자와 진행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초대하는 사람과 초대받는 사람의 분리라는 것이 어느 선에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누가 다른 사람을 그 공간에 있을 수 있게, 혹은 떠나도록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기준은 어디에 존재할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별로 나누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같은 날 있었던 한 참가자에 대해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 발언이 있었지요.
    그런 행위는 이번 불멍 스테이와 어떤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되는 걸까요?
    불멍이든 길멍이든 우동사든,
    앞으로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인가요?
    기록하신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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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Icon 0.02020.07.29 20:19

    우선, 기록한 사람이 아님을 밝힙니다.

    참가자와 진행자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모임의 파장이 울려퍼지는 데에 자신을 진원지에 가까이 두는지 퍼지는 파장에 두는지에 따라 진행자(주최자)에 가까운지 참여자에 가까운지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공간에서 여러 파장이 울려퍼질 수 있으므로 한 개의 파장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진행자와 참여자는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만든 파장에서는 진원지일 수 있고 타인과 만들어지는 파장에서는 흐름 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유로 한 모임에는 여러 진원지가 있다고 생각하며 공간을 제공한다고 중심에 위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했고 실제 한 사람이 공간에서 나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나가라는 발언 속 공간과 실제 모임이 일어나는 공간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공간은 사람을 내치지 않으며 사람이 사람을 내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사유를 불러 일으킵니다. 위 댓글은 생각할 여지를 주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모임에서 추방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입니다. '제공한' 공간에는 언제든 다시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지요. 그 곳에서 내침을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힘과 공포로 느껴졌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간에서 쫓겨난 사람이 있었다는 결과를 내리기 전에 해당 사건으로 돌아가 서로가 동등한 위치가 아니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원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진원지였고 파동 위에 있던 사람을 밀어낸 것인지 말입니다. 반대로, 만일 다양한 진원지에서 파동이 그려지던 열린 자리였다면 해당 사건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야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간 다층적인 상처가 있었습니다. 다툼을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부정적인 마음보다 신뢰하고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게 소통의 근원이 될거라 믿습니다.

    더해, 해당 사건의 당사자들 맥락 위에 놓여져 있던 '공간'을 확대해 그것을 우동사로, 불멍으로, 길멍으로 대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공간에서는 매 순간 순간 다양한 사람에 의해 수많은 파장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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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30 13:53

      네, 참가자와 진행자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지는 않는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각자가 어떻게 다르게 느끼는가를 묻는 것이구요. 당일에도, 모이기 전에도 ‘진행’과 ‘준비’, ‘초대’ 라고 불릴 법한 여러 언어와 행위들이 있었지요. 그 실천들을 각자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좋겠네요.

      발언의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댓글 다신 님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파장이 연동하며 흐르는 것인데, 유달리 한 ‘사람’만을 따로 떼어 그 사람만의 공간으로 말할 근거는 어디에 있나요?
      관계적 연동, 시간적 연동, 의지와 감정, 실제 행위들의 연동이 얽혀 공간이 되는 것이 아닌지요.

      그런 점에서 길멍이나 불멍으로 공간을 ‘확대’ 한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공감이 어렵군요. 어떤 연관성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를 막는 말하기로 들립니다. 그 날의 일을 이 글에 기록하신 분도 ‘우동사’의 블로그에, ‘길멍/불멍’의 이름을 사용하며 어떤 서사 안에서 그 공간성과 연동하고 계시지요. 댓글 다신 분도 마찬가지로 글을 읽고, 이해하고, 답하는 행위로 참여하고 계시고요.

      또 저는, 앞선 제 댓글에서 누군가가 ‘쫓겨났다’는 데 초점을 두지 않았어요.
      단지 누가 누군가를 ‘나가라’고 할 권리에 대해 물었고, 그런 것이 있거나 없다면 어떤 기준에서 그러한지 대화를 열어 본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답글 주신 분은 ‘공간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내치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답을 주셨는데, 그러한 명제에는 동의하지만 무조건적 환대라는 불가능한 이상에 가까운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어떤 제약들이 발생할거라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그 제약을 어떻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언행을 하고 당사자끼리는 그 해결이 어려울 때, 주위의 사람들은 어떤 입장에서 그러한 장면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침묵하기로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고, 발언하기로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제가 설정하고 묻는 질문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개개인들의 선택과 참여가 매 순간 이어지는 곳을 공간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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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Icon 0.02020.08.02 23:55

    관계, 시간, 의지와 감정이 얽힌 공간은 사회적 맥락을 갖는 공간으로, '사회적 공간'입니다. 반면, 공간 자체는 '물리적 공간'이지요. 때문에 발언의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분리한다는 말은 사회적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분리함을 뜻합니다. 왜 분리해 생각해야할까요? 이야기에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건에는 당시 시간과 공간이 있습니다. 사건에서의 공간은 각자의 해석, 감정, 관계가 얽힌 공간으로 개개인의 사회적 공간입니다. 사건의 진원지에 있는 한 두 사람'만의' 공간이 아닌, 당시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개개인의 맥락을 갖는 사회적 공간'으로 사건 속에서도 공간을 자꾸 쪼개고 분리해 생각해야 함을 말합니다.

    이런 일들을 어떤 연관성으로 해석하는지 궁금합니다. 오로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했는지 서로가 서로의 존엄성을 훼손하던 상황인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툼 속 긴장된 분위기 속에 있던 사람들은 자발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곤 각자의 방식으로 뻣뻣하고 경직되게 참여할 텝니다. 회피나 적극적 참여 외에 누군가는 목격자로, 누군가는 사건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으로, 또 누군가는 사건이 불러일으켜 자신의 트라우마 속 공간으로 그 공간을 가져갈 수도 있을 겁니다. 네,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공간은 개인의 선택과 참여가 매 순간 이어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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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3 15:29

      답글 주신 분의 말씀을 순전히 이론적인 측면에서만 읽으려 했을때, ‘사회적 공간성’과 ‘물리적 공간성’의 분리는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에 가깝게 들리며 앞선 파장들에 관한 내용과는 여전히 연결이 어렵네요 저는. 발언의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분리하고 계신데, 굳이 말하자면 저는 답글 주신 분의 언어로는 ‘사회적 공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고, 저의 경험과 맥락이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말을 걸 뿐이죠. 글쓴 분도 마찬가지시겠지요. ‘기록자가 아니다’라는 말씀에는 위치성이 드러나는데, 다른 부분들은 주어가 생략된 채 일반론적 말하기로 들립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내용도 제가 곁들여 말하게 되네요.

      하지만 저는 일반론적인 내용을 주고받기보다 각자의 시선에 한계가 있음을 아는 채로 묻고, 새로이 생각하고, 답해보고, 다시 묻는 방식의 대화를 원하네요. 서로를 표현하고 이해할 때 기댈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언어, ‘관점을 가진’ 언어들을 경유해서요. 그러지 않고 어떤 전지적 시점에서, 혹은 관찰자적 시점에서의 말하기는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그런 방식의 말하기로 어떤 새로운 소통과 이해로 나아가기는 어렵겠어요.

      이런 일을 어떻게 해석하냐고 물으셨을때는 초점이 다소 넓게 느껴집니다만, 답하자면 제 첫 댓글로 돌아가네요. 어떤 자리와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참여가 모두에게 주어진다고 본다면, 제 생각에는 그 자리에서 나가라고 발언할 권리도 모두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즉각적인 시공간이 아니라면 사후에라도 말입니다. 그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제 댓글이 있고요.

      존엄성에 대한 훼손은 하나의 예를 든 것입니다. 물론 각 사건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존엄성이나 훼손에 대한 시각은 다르겠지요. 다만, 한 사건을 ‘다툼’이라거나 ‘트라우마’와 같은 언어로 회자하기 시작하면 쉽사리 사적이고 개별적이며 일화적인 사건으로 이해하기 쉬워지겠죠. 그러면 앞으로도 어떤 사건이 공공의 문제로 이야기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 같고요.

      한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각적인 시각이 있다는 사실에는 우리가 동의하는 것 같네요. 또 한 시각만이 옳지 않다는 데도요. 그렇다면 한 사람이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인상을 남기기(혹은 남기지 않고 침묵하기) 전에, 서로가 가진 서로 다른 이해를 나누는 자리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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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Icon 0.02020.08.04 23:06

    위 댓글의 세네 번째 단락을 합쳐 파악해 보면 위 댓글을 다신 분은 그 자리에서 나가라고 한 발언에 관해 공공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에 관한 제 개인적인 의견은, 아무 맥락과 이유 없이 초대자의 권력을 휘둘러 '나가라'고 하는 건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발언입니다. 그리고 댓글 주신 분의 글만 읽었을 때는 발언자가 초대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말한 것으로 읽힙니다. 때문에 댓글 다신 분의 글에서 읽은 발언자는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 궁금증이 몇 개 떠오릅니다. 첫 번째 의문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입니다.
    두 번째 의문은 발언자가 '초대자'였기에 나가라고 했던 것일까? 입니다. 한 가지 이유가 아닐 수 있고 발언자만이 답할 수 있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공간이라는 조건이 작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섣부른 가정하에 앞으로 모임은 주최자가 여러 명이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공적 공간을 지향한다는 예방책이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는 혹여 맥락이 있었더라도 누구를 밖으로 내보낸 행위에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하며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가?" 라는 의문도 듭니다. 어떤 상황이었기에 마음을 나누던 친구를 내친 것인가? 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지요.

    네, 서로 다른 이해를 나누는 자리를 갖는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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